선거의 승패가 ‘단일화’에 달린 나라

동물잔치에 갔더니 돼지가 보이지 않는다. 돼지와 개가 자기들끼리 단일화를 해서 개만 나온 것이라고 한다. 소와 말이 단일화해서 말만 나왔다. 고양이와 쥐가 자기들끼리 힘을 겨룬 결과 고양이만 나왔다고 한다. 사회현상을 동물세계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면 분명하면서 재미도 있다.

지난달 28일 시흥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동 기자회견이 있었다. 우선 민주당의 도덕성에 대한 성토부터 있었다. 이번 재선거를 초래한 민주당이 사과 한마디 없다고 비난했다.

2008년 함진규 현 한나라당 시흥갑위원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도의원을 사퇴하면서 보궐선거가 열렸다. 이때 지역의 민주당은 선거비용은 이제부터 보궐선거를 초래한 정당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연수 전 시장의 퇴진으로 시장 보궐선거를 하게 되었을때 민주당은 한나라당에게 도의적 책임을 지고 후보를 내지 말라고 소리쳤다. 민주당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한데 입장이 바뀌자 침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노당과 국참당의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런 민주당을 비난한데 이어서 그 민주당이 이번 시의원 재선거에서 자신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덕성이 없다고 욕 해놓고 자신들과 손잡지 않으려 한다고 또 비난한다. 보통 사람들의 인간관계라면 이상한 짓에 해당한다.

민주당과 후보를 단일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막아야하기 때문이라고 국참당 조경호 위원장은 말했다. 한나라당이 이기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물었다. 국참당의 존립근거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시해한 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국참당의 이유가 그렇다면 할 말이 없되 한나라당의 선거 승리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 외의 모든 세력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는 와 닿지 않는다. 7080은 이미 추억이 되었다.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기본 권리를 총칼과 경제논리 앞에 굽혀야 했던 시절이 막을 내린지 벌써 20년. ‘반 한나라당 전선에 총 집결’ 같은 소리는 씨알도 안 먹히는 세상이 되었다.

참 좋은데,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어느 광고의 유행어처럼 단일화가 왜 좋은지 말을 못하고 변죽만 울리니 논리가 꼬인다. 말을 못 할 것도 없이 한국의 선거제도에서는 후보구도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단일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비슷한 성향이 여럿 나와서 표를 갈라 먹으면 지는 것이다. 20% 대의 득표율로도 당선이 되곤 하는 이 나라의 선거제도에서 단일화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사항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단일화’라는 말이 언론에 나온다. 서울시교육감이 단일화의 대가로 돈을 주었느니 말았느니 몇 달을 끌었다. 서울시장 선거도 밤낮 단일화 이야기이고 시흥시 시의원 선거도 야권이나 여권이나 정책 보다는 ‘표 분열’에 대한 얘기만 들린다.

‘표 분열’을 막으면 이기는 선거에서 후보매수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양보하는 후보에게 최소한 그때까지 들어간 선거비용 정도는 주는 것이 정치권의 양식이었다. 서투른 사람들 몇몇이 법의 철퇴를 맞았을 뿐.

단일화를 후보들에게 맡기는 현재의 선거제도로서는 후보매수 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끼리 ‘연대’하기로 했다고 하면 지지자들은 장수의 뒤를 따르는 고전소설의 졸개들처럼 옮겨 다니는 꼴이다.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자 그동안 한자리수의 지지율을 보인 박 씨의 지지율이 급상승 했다. 언론에서 ‘아름다운 양보’ 운운하기도 했지만 구경꾼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유권자들이 안쓰럽다.

유럽에 가보니 대부분 나라들이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투표에서 50% 이상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1등과 2등이 다시 맞붙는 제도다. 프랑스 선거는 대부분 2차 투표까지 갔다. 2주 간격을 두고서 1, 2차 투표를 한다. 일요일에 투표를 하는데 투표율도 그렇게 낮지 않다.

1차 투표에서 각양각색의 정치적 색깔을 가진 후보들이 나서서 지지율을 확인한다. 1차 투표가 끝나면 1, 2등 두 후보는 3위 이하 후보들을 지지했던 유권자를 끌어가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탈락 후보 진영의 정책과 인물을 채택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연대’ 또는 ‘단일화’가 이루어진다.

한국 언론에 하루도 쉬지 않고 나오는 그들끼리의 ‘단일화’, ‘연대’, ‘통합’ 이런 단어들이 편하게 들리지 않는다. 결선투표만 하게 되면 유권자들이 결정하게 될 일을, 그런 제도가 없으니 후보와 정당이 색깔을 뛰어넘어 스스로 단일화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통합’ 같은 단어들을 긍정적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도 편하게 보이지 않는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점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추구하라고 했다. 차이점을 억지로 삭제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나 단체나 서로 차이가 없으면 재미도 없고 발전도 없다.

현재 선거제도의 이점을 만끽하는 양대 정당이 결선투표를 도입할리 만무하다. 정치계에서 허구한 날 벌어지는 저 ‘인수 합병’들이 늘 불편하다.

시흥신문 j5900@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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