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모임이 있었다. 꼬막무침과 삼치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아쉬움이 남아서 맥주도 마셨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보낸 몇 시간동안 술 보다 노래에 취했다. 지하철역 신문 파는 집부터, 실내 포장마차, 테라스가 있는 맥줏집까지 임재범, 김범수, 박정연 등이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노래들을 크게 틀었다. 같은 가수들의 같은 노래들이 같은 순서로 반복해서 나왔다. 옥주현이 나오기 며칠 전이었다.
작년에 장재인, 허 각, 존 박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 직장에서 밤늦도록 퇴근도 않고 대국민 문자투표에 몰두했다. 떨어진 사람의 눈물과 살아남은 사람의 환호를 즉석에서 보여주는 방식이 이제는 흥행의 기본 코드로 자리 잡았다. 언론들은 지금 ‘서바이벌이 대세’라고 말한다.
단골 호프집이 며칠 사이에 텅 비었고 ‘임대문의’ 쪽지가 붙었다. 신천동 피자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어느 새 그 집은 옷집이 되어 있었다. 00마트는 없어진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 사이 못 보던 학원이 생겨나고 주목받지 못하던 가게들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문을 닫는다. 티브이 밖에서는 늘 서바이벌이 대세였다.
누가 무슨 가게를 해서 돈을 크게 벌었다는 소문 몇 개가 거리의 자영업자들이 벌이는 생존 게임을 이끌고 간다. 강호동이 선전하는 대형마트 때문에 문을 닫게 된 구멍가게의 자녀들도 강호동이 나오는 인기프로그램을 못 볼까봐 안달이니 서바이벌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너무 익숙해서 살벌함마저 잊고 사는 형편이다. IMF라고 흔히 부르는 외환위기 이후 피 터지는 경쟁들에 비명 지르던 사람들도 십년 정도 지나니 생존에 대한 일마저 무덤덤해진 듯하다. 서바이벌은 생활이 되었다.
거리에서 많은 자영업자들은 자신이 왜 패배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십년 전에 사람들은 잘못된 결과를 말하면서 대부분 ‘IMF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 그 이유들은 복잡하다. 빠르게 바뀌는 소비자의 취향과 그것을 주도하는 디지털 장치들, 사방을 둘러싸는 광고들, 대형화 추세, 이유를 알면서도 망하고 모르고도 망한다.
그러나 티브이 속의 생존경쟁은 규칙이 단순하면서 모든 것이 공개된다. 거대하면서 모호한 힘이 짓누르는 티브이 바깥의 세상에 지친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선거가 다가온다. 내년에 두 개의 큰 선거가 있고, 올해 시흥시에는 보궐선거가 치러질 가능성도 높다. 선거 역시 국민 참여에 의하여 단기간에 승부가 난다는 점에서 티브이의 서바이벌이 갖고 있는 흥행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는 TV에 나오는 저 프로그램들 보다 훨씬 재미없다. 먹을 만한 메뉴가 없으면 식당을 옮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선거는 다르다. 메뉴가 빈약해도 식당을 바꾸지 못한다.
정당들은 좋은 메뉴를 좋은 방식으로 내 놓아야 한다. 자신에게 충직한 하수인에게 보상으로 공천을 주거나 늘 나오는 사람을 또 내놓는 방식으로는 흥행에 실패한다. 선거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어떤 정치인들에게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역의 미래에는 부정적이다.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치르는 지역예선의 열기와 ‘나는 정치인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고수들의 자부심을 선거에서도 보고 싶다.
시흥신문 시흥신문@sh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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