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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 방조제에서 물을 빼내는 시간에는 배 두 척이 나란히 서 있지 못해서 한 척 씩 사람과 차를 싣는다. 배는 넓다. 2층과 3층의 대합실에는 둘러앉아 술을 마시거나 누워서 배의 소음을 듣는다. 승무원이 다가와서 “섬에서 무슨 일을 해 볼 생각이면 정말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 하는 말만 듣고서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건다. 가방을 사업용 돈 가방으로 보았나보다.
사람들은 새우깡 봉지를 뜯어서 갈매기를 부른다. 부산해운대 유람선에서도 사람들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먹였다. 배 안의 매점에는 새우깡을 들고서 계산을 치르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걸신들린 듯 분주했다. 유쾌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일 출항하는 대부해운 이 배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유행가를 틀지도 않고 모든 광경들이 평화롭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준이 탄 배를 쫓아 오는 갈매기들이 있었다. 이명준은 처음에 그 갈매기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총으로 쏘려고 했다. 그러나 갈매기들이 죽은 아내와 딸이 무덤을 가르고 나온 새라는 것을 알아보고 이명준은 크레파스보다 짙고 푸른 남지나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 남과 북의 어느 곳에도 펴지 못한 자신의 자리를 더 넓은 자유의 바다에 펼치고 누었다.
새의 눈을 보면 마치 세상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를 장식하는 가장 흔한 단어가 ‘자유’이고 보면 우리는 조류에 속하는 저들이 하등동물이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부산의 극장에서 본 리처드 바크 원작의 ‘조나단-갈매기의 꿈’은 중학생에게는 지루한 영화였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그 한마디를 보려고 극장에서 어둠을 견디었다.
그런데 왜 맛동산이나 양파링이 아닌 새우깡일까. 사람 또는 갈매기가 ‘새우깡’에서 새우를 떠 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종도 쪽을 바라볼 때 마다 비행기가 떠오른다. 장식해 줄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바라보는 맨 낯의 하늘에서는 비행기도 그저 어디선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한 마리 새 같다.
배에서 내린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승합차들이 모든 사람들을 나누어싣고 사라진다. 여객선과 승객들이 모두 떠나고 그제야 섬은 고요함으로 맞는다. 시간은 소리와 함께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 차 소리, 전화에 대고 말하는 사람소리, 스피커, 라디오, 기계소리와 함께 시간이 흐르는 것을 섬에 와서 깨닫는다. 마을을 지나면서 간간이 사람소리가 나면 시간은 잠시 움직인다. ‘바다로 가는 길목’ 주인은 자기 집에 머물면서 상추 같은 것은 마당에서 따먹으라고 한다. 이 동네 민박들은 거의 텃밭을 끼고 있으면서 투숙객들에게 채소를 따먹게 한다. 농산물의 부가가치가 방세에 비해 무료제공안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을 지나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서자 백사장과 파도소리가 들린다. 이제 시간은 파도소리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조금씩 흐른다.
이일레해수욕장에 난간을 내고 있는 이일레식당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상 위에 부루스타가 없어서 좋고, 국수 안에 바지락이 많지 않아서 좋다. 주방 쪽에서 덩치 큰 아들과 작은 몸의 엄마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둘째 넷째 토요일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이번 토요일에는 목사님들이 예약되어 있는데 나이가 들어 뭐든 잊어먹기 때문에 너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주로 엄마가 말을 한다.
머리를 박박 깎은 아들은 이 동네에 인터넷 되는 곳은 관공서 밖에 없다고 하고, 이 섬 초입에 높게 서 있는 동양콘도는 작년에 문을 닫았다고 말한다. 객실 수 150의 대형건물은 이 동네 민박과 펜션의 숨통을 눌렀을 것이다. 큰 것이 들어선다고 마냥 겁먹을 것만은 아니다. 작은 것이 시간만 견디어주면 승부는 알 수 없다.
밥을 먹으면서도 바다를 보고, 방을 잡고서도 바다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을 때도 바다를 본다. 바다는 흐르지 않으므로 섬은 늘 거기에 있다.
마을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밭에 사람이 있다. 조용히 푸성귀를 돌보는 사람이 있다. 때로 차도 다닌다. 기름이 떨어지면 차가 못 다니겠지. 기름이 떨어지면 차를 배에 실어서 육지 주유소까지 가야하는지 호기심에서 물었는데 외지인에게 줄 기름까지는 없다고 대답한다. 집집마다 경유를 채워둔 드럼통이 있다. 차를 배에 싣고 오더라도 섬이 작아서 기름이 떨어지는 일을 없을 거라고 한다. 마을의 차들은 제 집에 든 민박 손님을 바지락 캐는 해변으로 나물 뜯는 언덕으로 싣고 다닌다.
이일레백사장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는 도깨비수퍼 앞에 세 사람이 앉아서 각자 말을 한다.
“이 섬에도 빠끔한 자리는 모두 서울 인천 사람들 것이야”,
“좋은 자리는 서울 사람 것, 그 다음 좋은 것이 인천 사람 것이야”, “다 서울 사람 것이야, 인천도 이제 개털이야, 인천 본토도 이제 거지야”, “그래 돈 있는 사람은 다 서울로 가고 인천에도 가난뱅이들만 남았어.”
돈을 모으면 사람들은 다른 동네로 옮긴다. 거주지가 신분을 말하는 세상에서 주소를 밝히기도 망설여진다. 은행동에서 포동으로 이사할 때 입이 튀어나와있던 아이 생각이 난다.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아파트 안에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솔잎이 쌓여 카펫처럼 부드러운 학미산의 숲길은 호젓하다. 이런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동네들을 늘어세우고 하는 소리들에 아이들은 방어할 힘이 없다.
서울 사람들은 이곳에 건물을 여러 채 지어서 ‘민박 사업’을 한다. 인터넷에서 이곳을 그렇게 안내하듯이 자연은 수려한데 인심은 없다. 이미 한국의 많은 곳에서 자연과 인심 둘 다 없어졌는데 이곳은 그나마 낫다.
섬 중앙의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오른쪽도 바다 왼쪽을 보아도 바다다. 섬의 남동쪽 끝자락에 있는 ‘목섬’이라는 곳에 가보니 소주 마시기 좋은 곳이 널렸다. 1990년대 초반 화성군청 직원들이 생각난다.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대부도에서는 투표가 벌어졌다. 화성 안산 시흥 세 군데 중 어느 기초단체에 소속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였다. 우리 시의 지도급 인사들은 연일 대부도로 건너가서 시흥을 선택하라고 득표활동을 했다. 그러나 시흥은 안산에 역부족이었다. 화성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바닷가 어느 모퉁이를 돌아가니 바위틈에서 화성군청 직원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군에서 가보라고 해서 왔지만 화성은 말도 못 붙이는 형편이니 해변 어느 바위 뒤에서 소주나 마실 수밖에.
섬을 걷는다. 바람은 맑다. 아름드리 해송이 하늘을 가리고 이런 저런 꽃들이 땅을 덮는다. 이곳에 살고 싶다. 민박을 차려서 먹고 살까 생각을 하다가 들어오는 배에서 만난 선원의 당부가 생각난다. ‘섬에서 뭐를 해 볼 생각이라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 그냥 이렇게 생각날 때 마다 오면 되지. 먹고 자고 읽고 쓰고 걷고, 그렇게 다섯 가지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해질 녘에 방송이 나온다. 내일 작업은 굴 양식장에 작업이 있는데 남자들이 할 일이니 여자분 들은 나오시지 말고, 내일 미용봉사단이 오는 날이니 여자분 들은 머리를 하시라고 저녁 짓는 연기처럼 방송이 동네에 퍼진다.
펜션이나 민박을 새로 짓는 곳도 있고, 이미 있는 집을 새로 단장하는 곳도 있다. 성수기가 멀지 않았다. 지금 말없이 엎디어 있는 저 많은 일자형 건물들에 줄지어 있는 방마다 사람이 들이차는 성수기의 섬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고요와 바람, 청량함, 숲길, 바닷길이 지금과 다를 것이다. 천국을 관장하는 조물주 역시 시설 관리와 분위기 유지를 위해 인원 제한을 고려하지 않을까 아무렇게나 상상을 해 본다.
이쪽 바다에서 걸어가면 반대쪽 바다에 이내 닿는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으니 젊은 사람이 살기는 좁을 것이다. 하루만 동네를 거닐어도 길과 사람은 익숙해진다. 익명성의 도시가 젊은이들을 유혹할 때 익명에 지친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바위와 새와 한 뼘 바다 저편의 섬들과 안면 트고 살 것이다.
<글·사진:주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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