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그 겨울의 찻집), ‘길을 걸었지’(회상), ‘오늘도 걷는다마는’(나그네 설움). 나의 애창가요의 가사들에 걷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는 늘 걸으며 산다.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들이 선풍을 일으켰고 제주도 ‘올레길’은 제주 관광의 격조를 높였다. ‘지리산 둘레길’과 ‘북한산길’의 인기도 대단하다.
시흥에서도 ‘늠내길’이라는 걷기 지정 도로가 있다. 걷기를 권장하는 뜻으로 매월 한차례 걷기대회도 열린다. 사람들은 걷기 위해서 차를 몰고 모여든다. 이 행사에는 시장도 참석하는데 지난달에는 시장이 능곡 쪽 걷기대회에 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렸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제마다 걷는 이유가 있다. 다이어트 때문에 걷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보니 걷는 것을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어딘가로 가서 해야 하는 스포츠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애초 걷는 것은 여가와 스포츠이기 이전에 이동 수단이다. 자가용을 탈 것인지, 시내버스를 탈 것인지, 자전거를 탈 것인지, 걸을 것인지 사람들은 각자 이동 수단을 선택한다.
어딘가에 가기 위해서 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면 살도 빼고, 생각할 시간도 갖고, 차비도 아끼고 지구의 대기나 에너지 문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거리의 차량을 줄이기 위해서 시 정부는 안전한 보행, 나아가 즐거운 보행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 역시 차 없이도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시민들이 시내버스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말을 하면 시흥시 정부는 ‘시흥시는 주거지가 흩어져 있어서 시내버스 연결이 쉽지 않다’고 늘 말해왔다. 그러나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시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자전거나 걸어서 볼일 보러 다니기 좋게 해놓지 않았느냐’고 대답이 이어져야 한다.
하중동에서 능곡동으로 걸어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다. 술 마시고 저녁에 돌아올 때 시속 80킬로미터의 차량들이 무섭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둘러가려 하지 않고, 으슥한 길을 가지 않는 특성이 있다.
포동에서 은행동 직장까지 걸어 다니는 사람은 밤이면 자전거에 매다는 빨간 경보등을 손에 들고 다닌다. 경보등과 사람을 갑자기 발견한 차들이 급히 핸들을 꺾는 경우도 많다.
신천동에서 정왕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 함께 있다가 헤어지면 잘 들어갔냐고 안부전화를 걸어주어야 한다. 낮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 서해안로를 지나는 차들이 뒤에 늘어선다.
미산동 주민이 관할 주민센터가 있는 포동까지 걸어서 오려면 한덕판지 부근의 굽은 도로를 뛰어서 빨리 통과해야 한다. 문화교실을 이용하려면 차라리 은행동 쪽이 가기 편하다.
존경받는 한국사람 중의 한 명인 한비야는 걸어서 국토를 순례하면서 인적 드문 국도를 질주하는 대형트럭 때문에 고통 받은 이야기를 그의 책에 여러 번 적었다. 그런데 이곳은 농촌도 아니고 인구가 40만이 넘는 도시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려면 생명을 걸어야 하는 곳이 이곳저곳에 많은데, 시장은 사람들과 산으로 들판으로 걷기대회를 하고 있다.
정책은 없고 이벤트만 있는 도시라는 푸념들이 이해가 된다.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건강도시를 말하고 있으니, 걷기도 전에 춤부터 추는 꼴이고 벌거벗은 웃통에 넥타이만 걸친 꼴이다.
시흥신문 시흥신문@sh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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