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문학인이 일냈다”

시 ‘질경이의 꿈’으로 실직자의 애환과 희망 그려

“우리 모두에게 한번씩은 닥칠 수 있는 실직자들의 애환과 희망을 질경이풀로 의인화하여 서사적 시로 형상화 했는데 이것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했나 봅니다. 이 시를 우리 주위의 모든 실직자들에게 바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비중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8회 부천수주문학상 공모전에 시‘질경이의 꿈’을 출품,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임경묵(37)씨는 “항상 옆에서 시를 쓸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준 소래문학회와 저에게 항상 동화적 심성을 부여해주는 두 딸에게 감사하다”며 영광을 자신이 속해 있는 동아리단체에 돌렸다.
시흥고등학교에서 한문을 담당한다는 그는 집이 있는 장곡동에서 자동차로 학교에 출퇴근 하는 시간이면 창밖의 시흥의 자연풍경이 시심을 북돋우어 준다며 소백산이나 소래산이나 자연은 다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저의 시는 서정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당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실직과 같은 작은 아픔을 자연에 비유하여 삶의 편린을 담아 보려한 동화적 서사시로 보아달라”고 강조했다.
실제 그의 ‘질경이의 꿈’ 전체구조를 보면 소백산의 정상에서 주인공이 하산하는 하강의 이미지와 주인공인‘실직한 당신’의 어깨처짐의 하강적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이들 이미지가 질경이의 상승적 이미지 ‘생명력’에 의해 극복되어 주인공이 희망(꿈)을 찾아가는 동화이야기가 설의법적으로 메타포링되어 있다.
때론 그의 이번 당선작이나 전작시 ‘소금창고’, ‘마라도로 가는 고추좀잠자리’등을 보면 언어로 표현한 영상적 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일상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언어구사력과 대상에 대한 관찰력이 시적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심사위원들의 말마따나 앞으로의 더 큰 정진이 기대된다.
한편 부천을 빛낸 인물로 지정된 수주 변영로 선생의 시정신을 기리는 수주문학상 공모전은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며 부천시가 후원하여 기성, 신인을 망라한 전국문인을 대상으로 시작품을 공모한다. 대상엔 상금 5백만원과 상패, 우수상 각각엔 1백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이승훈, 최동호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이번 제8회 공모전에서는 임경묵씨의 대상을 비롯 우수상에는 현택훈의 ‘흐린명조체의 시’, ‘박기동의 ’동굴탐사’, 정출운의 ‘함석장이 노인’이 당선됐다. 최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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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의 꿈

임 경 묵

질경이도 꽃을 피우냐고요
바람이 구름을 딛고 하루에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백산 정상에서
꽃 안 피우고 살아남는 게 어디 있나요
노루오줌도 찰랑찰랑 지린 꽃을 피우고
심지어 개불알꽃까지 질세라 덜렁덜렁
망태를 흔드는데요 사실 말이지
그렇게 아웅대며 서둘 필요는 없거든요
밟힐 때마다 새파랗게 살아남아
가끔 뿌리까지 헹궈주는 바람을 끼고

소백산 허리에 닥지닥지 달라붙은
저를 보신 적이 있잖아요
실직한 당신의 낡은 등산화 밑에서도
이렇게 구겨진 날을 밀어 올리잖아요
혹시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온 길이 후회되세요
흔적도 없이 지워드릴 수도 있거든요
가파른 오르막길이 팍팍하고 힘들면
부담없이 제 발목쟁이를 또옥 따서
풀싸움이나 하면서 잠시 쉬었다 가세요
길 잃어 막막한 당신이 뿌리 채 뽑아서
하늘 높이 제기차기를 해도 그만이구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가진 그늘은
씨방처럼 부푼 땀방울들을 말리기엔
너무 키가 작으니까요
그러니까 제 발목쟁이를 드린다는 거예요
대신에 당신의 캄캄한 어깨를 껴안고

하산하던 씨앗 한 톨이
고개 묻고 돌아가는 당신의 뒤안길 혹은
보도블록 틈에 질긴 뿌리를 부리고 서서
언젠가 당신의 지친 발목쟁이에
입 맞출 수 있다면
저는 밟혀도 정말이지 괜찮거든요
이젠 당신도 다시 한 번
울먹이는 희망을 돌볼 시간이잖아요

최길열 기자 choigr57@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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