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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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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5.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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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금이동(錦李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삼리 도두리(道頭里)‧강창리(江倉里)였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전반면이 신현면‧황등천면과 함께 소래면으로 편제되어 신설된 부천군에 속하게 됨에 따라 부천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의 시흥군 편입으로 시흥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시흥군 소래읍 도창리가 되었다가, 1989년 시흥시의 승격으로 시흥시 도창동으로 자리잡았다. 행정동은 매화동으로 ‘금이’는 거멀(검월리)에 있는 금월산의 ‘금’(錦)자와 도리재의 ‘이’(李)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 아래서낭당

도리재에서 물왕동 얼마 가는 거리에 있는 나무로 본래 2그루가 있었는데, 한그루는 불에 탔다고 하며 지금 남아 있는 한그루도 1980년대초에 길을 넓히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불을 놓아 일부가 탔다.

= 온수물

도리재 동막골 안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5대 임금 문종이 그의 비(妃)인 현덩왕후의 묏자리를 잡으려 이곳에 왔다가 갈증이 나서 물을 마셨는데 물이 따뜻했다 하여 그때부터 이 우물을 ‘온수정(溫水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 운흥산

금이동, 논곡동, 물왕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높이 204m이다. 중국의 운흥산과 모양이 흡사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일설에는 아주 먼 옛날 천지개벽이 있었을 때 물이 넘쳐 산이 은행만큼 남아 ‘은행산’이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운흥산’으로 되었다고 한다. 1976년 산 정상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굴한 바 있다.

= 자라등

도리재 동막골에 있는 조선시대 부호군 신재정(申在政)의 묘가 있는 곳이다. 풍수로 보아 자라 등에 해당된다고 한다.

= 장수공기돌

운흥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있는 돌이다. 옛날 어느 장수가 이 돌을 공기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1976년에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인 곳이다.

= 정자산

도리재와 물왕동 얼미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평산 신씨의 종산으로 이곳에 조선시대 사헌부장령 신명윤(申命允)과 인제현감 신태동(辛泰東)의 묘가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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