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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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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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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매화동(梅花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이리 매착리(梅着里)와 율동(栗洞)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의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이 소래면으로 통합되어 부천군에 편제되면서 부천군 소래면 매화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시흥군 소래면 매화리로,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시흥군 소래읍 매화리로 개칭되었다.

1989년 시흥시 출범 당시 과림동‧금이동‧도창동‧매화동‧무지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었으나, ‘시흥시출장소설치조례’(시조례 제230호)에 따라 1991년 1월 15일 중림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과림동과 무지동이 분리되었다. 행정동의 명칭은 법정동 매화동에서 유래하였다.

=매채골(梅着洞)

섬말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경주 이씨와 경주 김씨의 오랜 세거지이다.마을 형세가 매화꽃이 떨어지는 ‘매화낙지형(梅花洛池形)’이라 하여 ‘매착동(梅着洞)’이라고 불리다가 음운이 변하여 ‘매체기’가 되었다. 옛날에는 매화동까지 물이 들어와서 배가 드나들었다. 어부들은 밤에 등대 대신 집의 호롱불로 육지의 거리를 갸늠했는데, 산을 등지고 있는 오목한 모양의 마을 호롱불이 매화꽃잎이 떨어어지는 것 같아서 ‘매착골’, ‘매체골’, ‘매화골’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매채기는 지역이 넓어 편의상 동쪽을 ‘웃말’, 서쪽을 ‘아랫말’, 웃말과 뒤미골 사이를 ‘섬말’, 섬말 동쪽을 ‘뒤미골’이라 불렀다. 웃말과 아랫말은 1980년대 급격화 도시화로 의미가 없어졌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3년에 한번씩 음력 10월 길일을 잡아 마을 뒷산에서 도당제를 지내기도 했다.

= 바티골(田反谷)

매채기 뒤(동쪽)에 있는 마을로 매채기 뒤에 밭이 있었는데 그 밭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밭뒤골’이라 했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지명이 변했다. 바탱이처럼 골짜기 입구가 좁은 곳이라는 뜻에서 붙은 지명이라는 해석도 있다. 조선 말엽에 세워진 이 마을은 전주 이씨와 경주 이씨가 세거했다.

= 새텃말(新基村)

간척지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섬말에 살던 강릉 함씨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형성되었다. 매채기 서쪽에 위치하며 현재 강릉 함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 중앙에서 보아 동북쪽을 ‘웃말’, 남서쪽 지역을 ‘아랫말’이라 불렀으며 현재 서능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 섬말(栗島)

마을 모습이 밤알 또는 섬처럼 생긴 마을로 새텃말 서쪽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 다른 마을과 떨어져 있어서 물만 없는 섬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700년대 강릉 함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후 강릉 함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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