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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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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1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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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은행동(銀杏洞)

은행동은 시흥시 중심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의 과림동에서 시계 방향으로 매화동, 신현동, 신천동의 순으로 둘러싸여 경계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신현면 삼리(三里)였다가,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인천부의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이 통합되어 소래면이 되자 부천군 소래면 은행리가 되었다. 1989년 시흥시 출범 당시 안현동과 은행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개청하였다. 1990년대 초부터 택지개발이 진행되어 법정동 은행동에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던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리’라고 불리던 마을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하였다.

= 금바위(劍岩)‧검바위

찬우물과 소래중학교 사이에 자리한 마을로 뒤 야산 길옆에 큰 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다가 비가 그쳤는데 잠시 후 온마을이 컴컴해지더니 하늘에서 서광이 비췅 살펴보니 마을 뒤에 있는 큰 바위에서 금빛이 발하고 있었다고 하여 ‘금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 이름은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검바위’라고도 한다.

= 모래골(沙洞)

웃터골과 소래중학교 사이에 있는 마을로 북쪽에 모래산이 잇는데 한국전쟁 후 이 곳에 난민들이 정착하며 마을이 형성되자 산 이름을 따 ‘모래골’이라 하였다. 공영개발택지지구에 포함되어 마을이 없어졌다.

= 목화(木和) 마을

서울시 목동(木洞) 철거민 36세대를 서울 강서구청과 시흥군이 합동으로 신천동 한독마을 공터에 천막을 설치하여 입주시켰다가 3개 동 105세대의 건물을 지어 1986년 9월에 이주시켜 조성한 마을이다. 마을 명칭은 목동 철거민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화홥하자는 의미이다.

= 웃터골(上基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신현면에 속했던 마을로 모래골 동북쪽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창녕 황씨가 처음 세거한 이래 김해 김씨 등이 세거하였다. 1980년 초까지만 해도 은행동 68-25번지에 있는 소나무 앞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3일 당제를 지내기도 했다. 공영개발택지로 개발되어 현재는 은행초‧중‧고교가 자리잡고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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