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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기온이 37도까지 올라 숨을 쉬기 어려워 헐떡거리기까지 한다. 습도가 높으면 체감 온도는 더 높다고 한다. 그늘이 보이기만 하면 그쪽으로 나도 모르게 발길을 옮긴다. 시원한 곳에 들어서면 떠나기 싫다. 폭염이 결코, 물러가지 않을 것 같은 기세다. 밤에도 방문을 열고 나가면 찜질방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바람이 힘있게 느껴진다. 시원하기까지 하다. 몇일 전부터 뉴스는 온통 태풍 ‘카눈’이다. 영향력이 매우 크단다. 속도가 느려서 다른 태풍과 비교하여 2배 이상 머물기에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머무는 시간이 16시간 정도 예측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비도 물 폭탄 수준으로 내린다고 한다. 그동안 내린 장마비로 지반이 약해졌는데 산사태와 건물 붕괴를 걱정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대책을 세워 보지만, 여전히 걱정이다.
이렇게 태풍이 걱정될 때 역발상으로 물 폭탄이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해 보려 한다.
필자는 7월 초에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기차를 타고 7시간 정도 여행하여 동부 끝자락인 안디잔까지 기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기후는 사막성 대륙형 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계속되는 여름은 건기로 열대 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뜨거운 우즈베키스탄 땅을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리는 기차 안은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으로 잠시 눈을 감고 쉼도 가능했다. 밖의 신기한 그림을 더 생각하고 싶어서 덥지만, 기차의 연결 중간 칸에서 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모든 땅이 메마른 광야는 아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풀이 있다. 나무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이 산다. 그래서 물은 생명이고 복을 의미한다. 거꾸로 물이 없으면 풀도 나무도 없다. 물론 사람도 살 수 없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바싹 메마른 광야다.
현지 친절한 청년의 도움으로 새벽에 더운 냄새나는 메마른 산을 오르게 되었다. 산 주변에 나무들은 살아남은 몇 개 외에는 거의 없다. 풀들은 두 종류가 눈에 띄는데 하나는 엉겅퀴다. 엉겅퀴는 우리의 것보다 잎사귀가 크지만, 우리나라의 것만큼 높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건기여서인지 크고 작은 엉겅퀴들이 모두 하얗게 말랐다. 자세히 살펴보고 더 놀랐다. 주변 넓은 잎사귀들은 하얗게 말라 죽었는데 가운데 연한 작은 잎사귀들은 힘겹게 푸른 빛으로 생명으로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풀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큰 잎이 알아서 먼저 죽어준다고 한다.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의 신비를 보고 놀랐다. 다른 한 종류는 케이퍼라는 풀이다. 엉겅퀴는 하얗게 죽은 것과 달리 케이퍼는 온 세상이 바싹 말라서 먼지와 돌 뿐인데 케이퍼만은 살아있다. 잎이 싱싱하지 않은 것을 보면 메마름에 힘들어하는 것 같지만 메마름 중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고 꽃이 보인다는 것은 신기했다. 케이퍼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돌아와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알고 나면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케이퍼는 향신료 중 하나다. 본래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하는 십자화목 카파리스과 식물이며, 이 식물의 꽃봉오리를 채취해서 가공해 향신료로 사용한다. 주로 식초에 절여서 피클 형태로 만들어 사용한다. 그래서 케이퍼 피클을 그냥 케이퍼라고 부른다. 색깔은 올리브 그린에 가까우며 육류나 생선의 냄새를 없애는데, 사용한다. 이를 다져서 소스에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뷔페나 레스토랑에서 생선 요리, 특히 연어 요리를 먹다 보면 완두콩과 크기가 비슷한 알갱이들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케이퍼다. 때문에 적잖이 콩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홀스래 디쉬 드레싱과 케이퍼, 훈제 생연어의 조합은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 조합이다. 겨자와 비슷한 매운맛이 나면서 동시에 상큼한 향을 가지고 있다. 향신료답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엉겅퀴와 케이퍼 두 풀은 험한 땅에서 살아서인지 독한 가시가 있다. 신발 바닥이 든든해서 괜찮을 줄 알고 밟았는데 신발을 뚫고 들어와 고통을 준다. 죽은 엉겅퀴 가시는 옷이나 운동화에 붙어서 파고 들어와 발등이나 피부를 힘들게 건드린다.
이렇게 독하고 거칠은 메마른 땅은 물 폭탄이라도 좋으니 비가 쏟아졌으면 간절하게 기다린다. 그런 마른 땅을 생각하며 물이 무서울 때도 있지만 물이 있어야 살고 복이 열린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하며 태풍이 무섭기도 하지만, 잘 대비하며 도리어 감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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