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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순(복지공익 활동가) |
어느 때부터인지 사회는 ‘힐링’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힐링이란 말은 간판에도 광고물에도 관공서에서도 책자에도 언어생활에도 널리 쓰이어 친숙한 외래어가 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렇게 힐링이 익숙하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명료하다. 힐링 없이는 우리의 애달픈 현실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힐링이 필요한 삶이 돼버린 사회, 힐링이 필요한 시대… 곳곳에 힐링이 넘쳐나 이를 거래하는 힐링 상품사회가 되었다. 힐링을 위한 여행, 도서, 식품, 오락, 모임, 행사, 치료 등을 통해 우리는 잠시 회생했다가 다음 날 다시 소진(burn out)의 늪에서 허덕인다.
어쩌다 힐링 전성시대가 되었을까! 그것은 무한경쟁과 구조화된 불평등이 원인이 아닐까! 문밖을 나서면 생존경쟁의 늪에 빠진다. 직장, 학교,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려나면 박탈감에 빠져 우울의 늪에 침몰한다. 경쟁을 벌이다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어 충돌의 늪에 난파된다. 우울은 내상을 입히며 병들게 한다. 갈등도 대결과 충돌을 일으켜 외상을 입힌다. 그렇지만 비경쟁적 갈등도 있다. 사교육카르텔에 교살당하는 공교육, 자본카르텔에 고통받는 빈자들, 권력카르텔에 신음하는 시민들 등, 이런 사회적 병리구조는 공동체에 내상과 외상을 준다.
경쟁과 대결은 남북 간에도 격하게 진행 중이다. 상호 생존을 위협하는 무력 경쟁은 군사적 대결과 충돌로 늘 터져 나왔다. 이렇게 대결하여 얻을 게 무엇인가! 평화인가 전쟁인가, 평화적 통일인가 적대적 흡수인가! 실로 오래되지 않은 기억을 소환한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금강산으로 개성으로 평양으로 평화롭게 넘나들며 평화를 누리던 그때가 살아 나온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이 땅에 군사대결과 무력충돌의 스트레스가 주기마다 찾아와 국민의 삶과 생명을 위협한다. 언제까지 생명을 단축하는 격한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고 이런 꼴을 봐야 하는가!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는 지난 3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내에서 우리나라의 불평등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한다고 했다. 국가별 소득 불평등 데이터 분석에서 2007년～2021년 사이 한국은 소득 최상위 1%가 전체 소득 비중에서 3.3%p 증가한 11.7%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였다. 계층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고, 불평등(자산, 소득, 권력, 학력, 건강 등)이 대물림되는 세상이다. 근래에는 기후 불평등에 따른 기후정의도 뜨겁다. 여기에 노인빈곤율과 노인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 산업재해율 등의 지표가 역시 OECD 회원국 내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기에 우리나라는 슬프다.
협동 없는 무한경쟁, 구조화된 불평등은 생존을 위한 반응으로 ‘힐링 사회’를 낳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연간 최장 노동시간이고(2021년 기준 5위), 가장 오랜 기간 노동시장에 남아 있다(은퇴 72.3세, 2019년 기준 1위). 과로하는 사회에서는 힐링이 중요한 충전 요소이다. 이렇게 힐링하고 일하고 또 힐링하고 일하는 무한 반복이 진정 옳은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답으로 유범상은 ‘필링의 인문학(2014)’에서 대증요법인 힐링보다 원인 처방을 위한 필링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필링은 구조적으로 나쁜 경쟁과 악마적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혁파해보자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힐링사회를 넘어 필링사회로 가야 할 때이다. 특수 집단이 만든 카르텔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자본의 성장만이 정의가 아닌, 경제적 약자에게 시혜가 아닌 정의로운 분배 차원에서 공동선의 가치가 요구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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