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계영석 변호사 시흥신문 편집자문위원장

올해는 우리 국민들이 깊은 애도 속에 오열하는 슬픈 일을 여러 번 당하는 운명의 해인지도 모르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를 겪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7월 중순 병원에 입원한 뒤 결국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서거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또 한 번 접하면서 그간 우리 국민들이 지도자로 뽑아 나라의 운명을 맡겼던 분들이 한 분 한 분 사라져 가는 슬픔과 함께 그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우리나라는 36년간의 일제 압제에서 벗어난 후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기인한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을 겪었고 그 뒤로도 지금까지 그리 길지 않은 세월 동안 9차례나 헌법 개정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엄청난 정치적 변혁과 고비를 겪어왔다. 그동안 숱한 선거와 투표를 통하여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인물들이 정치무대에 나타나 활동하다가 무대 뒤로 사라져 갔지만 정말 국민들의 마음속에 우리 온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맡아 이끌어 간 지도자로 남을 인물은 불과 몇 사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하여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헌정사를 살펴보면 위와 같은 헌법의 기본 원리는 처음부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6.25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어수선한 속에서 이루어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1차 개헌과 2차 개헌부터 개헌은 집권연장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더니, 5.16 이후에는 군부 집권을 위하여 개헌하고 그 후 3선 개헌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개헌 등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는 짓밟혀왔다. 그리고 10.26 이후의 군부집권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러한 집권층의 독재 아래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왔다. 이처럼 살벌한 세상에서 누가 감히 그들을 대항하여 민주주의의 회복을 이룰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암울했던 군부 독재기에 민주주의를 외치다 여러 번 생명을 잃을 뻔 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근소한 표차로 패배한 후 다음해 일본 체류 중 유신헌법 선포에 반대하고 민주화운동을 진행하는 가운데 납치되어 바다 속에 수장될 뻔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가택연금과 투옥을 거쳐 1980년 신군부 시절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군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사형선고를 앞둔 최후 진술에서도 결코 움츠러들거나 비굴하지 않고 민주회복과 민족구원을 염원했다. 그 암울한 세상에서 우리 국민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여 외치다 고초를 대신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얻는 복을 받은 것이다. 만일 그 시대 그러한 어두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독재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았다면 그런 질고의 세월은 매우 상당기간 더 지속되었을 것이다. 온갖 고난을 겪고 난 뒤 치러진 공정한 선거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온 국민이 겪은 외환위기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성과는 대단하였다.

젊어서 분기탱천하여 사회정의를 열심히 부르짖던 많은 이들이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서서히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해 초심과 의지를 잃어버리는 사례를 흔히 보아왔다. 정치에 입문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당 어느 정파에 들어가 무슨 감투를 어떻게 손에 쥐느냐하는 것 보다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위한 변하지 않는 정신과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의지,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후에는 남용하지 않고 정치보복에 이를 사용하지 않은 관용과 배려를 실행한 고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배우고 익히고 그 성품을 닮아가도록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모든 세대는 그러한 정신을 오래 오래 기리어 나가야 할 것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생을 통하여 정치적 업적을 많이 이루어 놓고 갔으나 아직 꿈꾸고 있었던 것들을 모두 이룬 것은 아니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민족의 분단, 남북간의 문제 뿐 아니라 남남(南南)간의 사회 내부의 대립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 내부의 대립은 이념 대립도 아니고 감정적 대립인 것처럼 보여 더욱 안타깝다. 우리 국민 개개인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여 그 통합체가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를 기본원리 대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고인이 바라던 꿈일 것이다. 남북간에 대립이 아니라 화해를 바탕으로 서로 통합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역시 그분이 바라던 소망일 것이다.

이제 고인을 보내드리면서 고인의 지나온 발자취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남게 되지만 이 시점에 차분히 우리 현대사의 지나온 궤적을 뒤돌아보면서 현재를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정의롭고 살맛나는 미래를 설계해 나가기를 그분과 함께 꿈꾸어 본다.

시흥신문 시흥신문@sh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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