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엔 고층 아파트 단지 저너머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그곳 145만 평이나 되는 폐염전에 드문드문 서 있었던 30여 채의 소금창고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한 독특한 정취를 안겨주었었다. 목제 소금창고는 오랜 풍설에 낡을대로 낡았으나 폐가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소금창고들은 이제 옛 추억이 되고 말았다.
이곳 폐염전의 소금창고 수십채가 최근 갑자기 사라졌다. 시흥시가 2010년까지 갯골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던 중 이곳에 골프장 건립을 추진하던 소유 회사 (주)성담 측이 지난 4일 소금창고들을 일방적으로 기습 철거해버렸기 때문이다.
시흥 시의회가 즉각적인 항의와 함께 소금창고 원상복구를 결의했고, 시흥시도 소금창고 무단철거에 대해 성담 측에 강력한 항의와 함께 원상복구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흥시는 염전 부지와 소금창고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재추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 역시 지난 7일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소금창고의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했으나 정작 지정 대상인 소금창고가 죄 철거돼버린 상황에서 문화재 지정의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성담 측이 시흥시와 시의회의 항의와 즉각적인 원상복구 요청을 받아들여 소금창고를 복원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시의 갯골생태공원 조성계획과 등록문화재 지정이 추진되던 와중에서 소유 회사측이 이곳에 골프장을 건립하겠다며 문화재 등록 대상을 일방적으로 철거해버린 일은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시흥시장과 성담 관계자 등이 소금창고 철거 5일전에 만나 문화재 등록에 대해 논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연수 시장은 “지난달 30일 오후 정왕동의 한 음식점에서 성담 관계자 등과 만난 것은 사실”이라며 “‘성담측이 폐염전 지대에 널려 있는 모든 소금창고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은 (개발할 때) 부담이 가니 일부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는 달리 토지주의 재산권이 침해받지 않아 개발에 문제될 것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며 “‘성담측이 법률적으로 소금창고를 철거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서 철거는 절대로 안되며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성담측은 폐염전지대 소금창고를 철거하기 위해 법률적 검토까지 받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흥시도 성담측이 폐염전 지대의 소금 창고를 철거할 계획을 갖고 있음을 미리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도시 속에 갯벌로 남아 있는 시흥 폐염전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1930년대에 조성됐던 소래 염전의 소금은 부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됐다. 민족사의 아픔이 밴 곳이다. 경기만 최대 염전으로 이름 날리다 채산성 악화로 1996년 7월 31일자로 폐염된 후 오로지 소금창고들만 70여 년간 비바람을 견뎌오고 있는 이곳 폐염전은 지금 생태계의 보고가 되고 있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갯골(갯벌의 꼬불꼬불한 골짜기)에는 사방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는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 염생(鹽生)식물들과 어패류들이 터잡고 있다.
이번 사안은 등록문화재 지정의 문제점을 또 한 번 노출시켰다. 2001년 근대문화제 등록제 도입 이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된 후 지정 취소된 사례가 올해 4월 현재 19건이나 되며, 소유주가 철거한 사례도 6건이다. 문화재로 등록될 경우 혜택은 적고 규제는 많은 탓이다.
문화재 지정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철거 신고제도 허가제로 바꿔야 무분별한 철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보존가치 있는 문화유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 빨리 관련 제도나 법규를
재정비해야 한다. 시흥 폐염전의 철거된 소금창고가 과연 옛모습 그대로 되살려질지, 문화재로 등록돼 보존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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