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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곗바늘은 항상 자리를 옮겨 다닌다. 시곗바늘이 옮겨 가다보면 저녁이 되고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도 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흘러간다.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한 달이 가득 차고 달력을 넘겨야 한다. 한 달도 그러하다. 한 달 한 달 지나다보면 한 해를 채우고 새해로 넘어가야한다. 한 해 두 해 넘어가다보면 몸은 늙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게 된다.
어느덧 12월 마지막 달이 되어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다.
뜰 앞의 감나무를 보니 잎은 서리를 맞아 다 떨어졌지만 주황색 감은 주렁주렁 달려있다. 올 봄 처음 가지 끝에 연한 녹색 잎이 돋아 올랐다. 그리고 꽃을 피우더니 비와 바람을 견디고 혹독했던 무더위를 견디고 탐스러운 감을 세상에 내 놓았다.
감나무는 법륭사 마당가에 있으면서 보든 보지 않든지 간에 스스로는 열심히 산 것이다. 나는 감나무만큼이나 올 한 해 열심히 살았을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든 소외 되든 굴하지 않고 내 수행에 전념했을까?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일어난다.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수필집이 있다. 그 많은 법정스님 수필집 중에서 유독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법정스님은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걷지 않고 마을에 살았더라면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부가 아니면 묵묵히 나무를 다듬어 물건을 만드는 목수가 되었을 거라 한다. 새벽에 찬 공기를 맞으며 청소차에 묵묵히 쓰레기 봉지를 싣고 있는 청소부를 보면 어떤 종교행사 보다도 거룩하고 겸허해 보인다고 했다. 가을이 되면 미련 없이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처럼, 세월이 흘러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청화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열반송을 남겼다. 열반송은 죽음을 앞둔 스님들이 세상에 남기는 간결한 짧은 글이다.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오고 가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나 은혜를 입은 것은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은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다.’ 청화 스님은 하루 한 끼 공양과 눕지 않고 선수행을 평생 한 수행자였다. 열반을 앞두고 그 어떤 진리를 말하기보다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은혜를 입은 것은 우주를 넘어 광대한데 은혜를 갚은 것은 산속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음을 한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나는 청화스님 열반송을 화두처럼 외우고 산다. 올 한 해 살아오면서 자연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 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다가 삶에 끝에서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오고 감에는 상관하지 않는 수행자로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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