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야당과 그 당의 대선 예비후부들을 폭언에 가까운 점잖치 못한 언사로 비판하고,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비록 임기를 여덟달 쯤 남겨둔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그날까지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이룩한 국민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더욱 북돋고, 오는 대선에서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차기정권이 탄생할 수 있도록 나라의 중심을 잡아 나아가야 하는 것이 지금의 시점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소임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무슨 계산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나 홀로 울게 하소서’를 목이 터지게 부르면서 국민의 시선을 모으는데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대통령의 이런 언동은 국민정서와는 엇나간다. 노무현 대통령이 누군가를 공격하면 공격받은 쪽의 국민 지지율이 더 올라간다. 이것이 오늘의 민심이다.
자신이 만든 정당은 풍비박산인 가운데 ‘나홀로’ 되다시피 한 대통령이 ‘참평포럼’이라는 소수의 열성 펜클럽 특강에서 막말 수준의 표현으로 언론과 야당과 그 예비후보들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세계적 대통령’이라고 했던 것은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중앙선관위는 노 대통령이 참평포럼 특강에서 한나라당과 그 당 대선 예비후보들을 공격한 것이 ‘선거법상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바로 다음날 대통령은 원광대 명예박사 학위수여장에서의 특강을 통해 이같은 독립 헌법기관의 결정을 “씨잘떼기 없는 소리”라는 식으로 코웃음치며 ‘위헌’이라고 들이받았다. 그러면서 다시 한나라당과 그 예비후보들을 더욱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헌법상의 최고 판단기구 가운데 하나인 선관위의 결정에 불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헌법 수호자가 헌법기관으로부터 범법 판정을 받은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닌 터에 대통령은 그 결정문을 보란 듯이 발기발기 찢어버린 셈이 됐다.
언론에 대해서도 막말을 섞어가며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독재시대에는 독재와 결탁하고, 시장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시장의 지배자와 결탁하고, 권력에 참여해서 버스럭지(부스러기)를 얻어먹던.....”
그러면서 최근 논란이 된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 기자실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제가 확실하게 대못으로 대못질을 해 버리고 넘겨주려고 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언론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음은 이해할만 하다. 여기에 길게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지난 5월26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나는 여러분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양대 축인 의회와 언론의 중요성을 항상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의회와 언론은 분명히 때로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지만, 그 기관들은 미국의 자유를 지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게이츠 장관은 이어 “우리는 언론 앞에 정직해야 한다. 언론 보도가 사실이면 이를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언론은 적이 아니다. 언론을 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자멸하는 일”이라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현명하게 이해한 바와 같이 의회와 언론과 우리 군이 자유국가를 지킨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개론적인 얘기지만, 이는 마치 우리나라 대통령 들으라고 한 말 같다. 이달 초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집단’으로 언론이 가장 첫 번째로 꼽혔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유와 인권과 법치와 언론 자유이며, 언론 자유는 모든 자유의 토대가 된다.
대통령의 날선 언동이 어떤 정치적 계산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노 대통령은 자칫 역사에 ‘헌정질서 파괴자’로 기록될 수 있다. 이쯤에서 대립과 공격을 거둬들여야 한다.
서부신문 webmaster@shnews.net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