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간 속에서 시간을 구성하며 산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이지만 남겨지지 않은 역사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만다. 문자화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말을 통해서 재현되기도 하는데 바닷물이 드나들던 시흥의 갯벌은 단단한 땅으로 바뀌었고, 배가 드나들던 갯고랑에는 옛 추억이 아쉬워 찾아오는 바닷물만 오갈 뿐이다. 본지는 「시흥시사(始興市史)」를 참고해 옛 시흥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3. 시흥 농촌지역 장시와 유통
3-2. 장시와 교통망
 |
월곶동과 죽율동, 정왕동 등 옛 군자면의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 주민들도 도일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인천을 많이 출입하였다. 1937년에 수인선이 놓이면서 이 지역 주민들도 기차를 타고 인천을 출입하게 되었으나, 그 이전에는 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이 일대에서 인천으로 왕래하는 배들을 댔던 나루터로는 월곶동 고잔마을 서북쪽에 있는 구능뿌리, 송곶이, 조구나리 등이 있었다. 구능뿌리와 송곶이는 소래염전을 만들기 이전에 인천으로 가는‘똑딱선(똑딱 소리를 내는 발동기선)’을 댔던 곳이다. 여기에서 똑딱선을 타지 않으면 육로로 걸어서 인천으로 가야 했다. 소래염전을 만들기 위해 제방을 막고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구능뿌리와 송곶이에는 배를 대지 못하게 되었으며, 구능뿌리보다 바깥에 있는 조구나리가 새로운 나루터가 되었다. 조구나리에 댔던 배는 돛을 달아서 풍력으로 이동하는 중선이었으며, 똑딱선은 구능뿌리와 송곶이에 배를 대지 못하게 되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중선은 짐배로, 주로 인천으로 나가는 나무를 실어 나르는 일을 하였다. 중선은 똑딱선처럼 상시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실어갈 나무가 있을 때만 왔다. 구능뿌리에 배를 대던 시절에는 여기에 당으로 모시는 나무가 있었으며,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수인선이 놓이면서 정왕동, 죽율동 주민들은 정왕동 평안촌 군자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가게 되었다. 월곶동은 수인선 소래철교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위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기차역이 없었기 때문에 이마을 주민들은 갯고랑을 건너서 소래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월곶동에서 군자역까지 내려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는 인천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월곶동 주민들이 군자역을 이용하는 일은 없었다. 월곶동 이호정마을에 있는 달월역은 군자역과 소래역 사이에 있는 역이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달월역은 수인선이 처음 개통될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이후에 생긴 것이라 한다.
 |
| 조구나리. 소래염전이 조성된 후 인천을 왕래하던 배가 드나드는 나루터가 되었다 |
달월역이 생기기 이전 월곶동에서 소래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소래철교 근처에 있는 나루에서 배를 타야 했다. 이 나루는 건너편에 배가 닿는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노렴마을의 이름을 따서‘노렴나루’라 불렸다. 나룻배 사공은 노렴마을 사람이었으며, 노렴마을에 이 사람이 운영하는 주막이 있었다. 월곶동 쪽에서 건널 때는 소리를 쳐서 건너편에 사는 사공을 불러야 했는데, 도선료는 배를 이용할 때마다 지불하였다.
수인선 소래철교가 생기면서 노렴나루터는 그 기능을 중단하게 되었다. 당시 전매국에서는 소래철교 위에 널판을 깔아 염전을 왕래하는 염부들의 통행을 돕고자 하였다. 그러나 철도국에서 이를 반대하여 곧 널판을 철거하였고, 철교 위로 사람들이 통행하지 못하도록 직원을 세워서 지키도록 하였다. 이 일로 노렴나루가 부활하게 되었으며, 군자면 일대에서 인천시내로 나가는 사람들 외에 염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까지 이 나루를 이용하여 한때는 도선객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소래철교 위로 사람들이 다시 통행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중의 일이었다. 1·4후퇴 때 사람들이 소래철교를 건너 피난을 가게 되자, 인근 주민들이 염전사무소에 있던 널빤지를 침목 위로 깔아서 제대로 건너다닐 수 있게 하였고, 소래철교는 일시적이나마 인도교를 겸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소래철교 위로 사람이 통행하는 것은 다시 금지되었고 널판도 철거되었지만, 사람들은 일단 익숙해진 철교통행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으며, 누구나 철교 위를 건너다니게 되었다.
노렴나루의 나룻배는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가, 전쟁 후에 다시 운행을 재개하는데, 전쟁 후에 운행한 나룻배는 염전 소속의 배였다. 사공 역시 염전사업소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시흥 쪽에서 물을 퍼다 염전에 공급하는 일을 하면서, 소래철교의 철로 침목 위로 건너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였다.
 |
| 달월역 이정표. |
그러다 달월역이 생기면서 배로 갯골을 건너는 일도 없어지고 나룻배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노렴나루나 소래철교를 이용한 이들은 주로 군자면 일대 사람들이었으며, 인천 사람들이 노렴나루나 소래철교를 건너 시흥 방면으로 오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군자면 일대 사람들은 인천시내로 장을 보러 나갈 때 곡물 등을 짊어지고 가서 판 후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 왔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곡식뿐만 아니라 집에서 재배하는 채소들을 인천으로 가지고 가서 파는 일이 많아졌다.
군자면 일대뿐만 아니라 수인선변에 있는 농촌 마을 주민들이 수인선을 타고 인천시내로 가서 곡물이나 채소 등을 파는 일이 많아지면서, 수인선 종점인 신흥동 남인천역 옆 공지에는 좌판이 벌어지게 되었으며,‘수인역시장’이라는 말까지 생기게 되었다. 1973년에 송도역에서 수인역까지 철로가 철거되면서 송도역이 수인선의 종착역이 됨에 따라 남인천역 앞에 벌어졌던 좌판 역시 송도역으로 옮겨오고, 군자면 일대 주민들도 집에서 재배한 농산물
을 송도역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시흥의 동쪽지역에서 주로 이용한 장은 안양역전 주변에 형성된 재래시장들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다시 열린 안양장은 이전 시대의 군포장을 이어받은 것으로서, 안양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장이 설치되면서 소재지 역시 호계동에서 경부선 안양역 앞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후 안양역 상권은 계속 성장하게 되어 1961년에 안양중앙시장이 생겨나는 등 정기시장은 상설시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와 같이 안양역 상권이 성장하는 데에는 철도의 역할이 한몫 하였다. 시흥 주민들은 버스가 일반화되기 전까지 안양을 걸어서 다녀야 했다. 매화동, 도창동 등 수인산업도로 주변의 마을에서 안양으로 갈 때는 이 길을 따라가다가 금이동 방죽머리에서 광명시 가학동 벌말과 장터말로 이어지는 소로를 이용했다.
이 길은 안양시 범고개로 연결되었고, 범고개에는 주막이 한두 채 있었다. 금이동 거멀마을에서는 마을 북쪽에 있는 구리넘어고개를 넘어서 방죽머리까지 갔다. 금이동 도리재마을에서는 설고개(또는 솔고개)를 넘어가면 방죽머리로 갈 수 있었다. 설고개 마루턱에는 서낭나무가 있었다. 도리재에서 방죽머리로 연결된 길은 광석동 및 물왕동 월미마을 주민도 이용했다. 물왕동 능골이나 산현동 등 시흥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에서 안양으로 갈 때는 금이동 방죽머리에서 안양 범고개로 이어지는 길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원목감(모감)의 구녕지고개, 곤드레미고개, 안양 공군부대, 박달삼거리를 경유하는 길로 다녔다. 곤드레미고개는 경사가 심해서 이 고개로 가는 것은 힘이 들지만 질러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물왕동 능골과 산현동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안산시 원곡동에서 시흥시 군자동, 능곡동, 하중동, 미산동, 신천동, 대야동을 거쳐서 부천으로 가는 39번 국도는 1917년에 측도된 1:50,000 지형도에는 소로로 나와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 길은 1940년대에 주민들의 부역으로 길을 넓히고 자갈을 깔아서 부천에서 원곡동까지 하루에 서너 번 버스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이 버스는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었으며 숯을 동력으로 사용하였다. 도로가 새로 닦이고 버스가 운행되면서 시흥 주민들이 부천을 왕래하는 일은 한결 수월해졌고 부천에서 신천동까지는 1928년에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당시 버스는 소신여객 소속의 것으로, 8인승 포드였다. 소신여객은 금이동 출신인 신현순(1895~1969) 씨가 설립한 회사이다. 신현순 씨는 1932년에 안양-정왕동 옥구도 간 도로가 개설되자 이듬해 운수사업을 실시하여 하루 8번씩 버스를 운행하기도 하였다.
 |
| 포동~방산동 마을버스 개통식. |
시흥 주민들이 주로 이용한 부천의 시장은 심곡동에 있는 재래시장이었다. 부천의 상권이 커지면서 시흥의 서북쪽지역에서는 인천 쪽보다는 부천을 가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부천 쪽 시장을 이용한 마을 중 방산동은 39번 국도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이 부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포동 걸뚝마을이나 신천동까지 나가야 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에 새마을사업의 하나로 주민들을 부역에 동원해서 포동에서 방산동을 경유하여 신천동으로 가는 마을 앞길을 확장하고 새마을버스를 운행하게 되었다.
【자료 출처 : 「시흥시사(始興市史)」 제5권 <시흥 농촌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中】
김경혜 기자 niba845@hanmail.net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