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간 속에서 시간을 구성하며 산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이지만 남겨지지 않은 역사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만다. 문자화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말을 통해서 재현되기도 하는데 바닷물이 드나들던 시흥의 갯벌은 단단한 땅으로 바뀌었고, 배가 드나들던 갯고랑에는 옛 추억이 아쉬워 찾아오는 바닷물만 오갈 뿐이다. 본지는 「시흥시사(始興市史)」를 참고해 옛 시흥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3. 시흥 농촌지역 장시와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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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내우시장 장터(1970년대) |
3-1. 장시와 교통망
시흥의 농촌지역 주민들이 출입하였던 장시는 지역별로 상이할 뿐만 아니라, 시기별로도 변동을 보인다. 지역별로 시장권을 구분해 보면, 옛 소래면지역 중 서쪽지역은 인천과 부천 상권에 속하며 동쪽지역은 안양권에 속한다. 옛 수암면지역의 동쪽지역 역시 안양권에 속하나, 서쪽지역에서는 시흥 관내에 있는 삼거리장과 도일장을 많이 이용하였다.
옛 군자면의 내륙지역에서는 삼거리장과 도일장을 이용하였으나, 해안가에 접한 지역에서는 인천 방면으로 많이 가다가 1950년대 이후 도일장이 생기면서 이 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옛소래면지역의 동북쪽에 위치한 과림동과 무지내동에서는 오류동과 광명동에 있는 상설시장을 이용하였으며, 도일장을 출입하던 지역에서는 안산의 초지시장까지 이용하게 되었다.
반면 인천과 부천을 이용하던 신현동(방산동, 포동, 미산동), 대야동(대야동, 계수동)은 신천동에 현대적인 상권이 형성되면서 이곳을 많이 이용하게 되어 생활권이 축소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우시장의 경우는 시흥 전 지역에서 뱀내장을 많이 이용하였으며, 소를 사기 위해 수원장을 출입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빈도수는 낮으나 소사장, 황어장, 삼거리장 등도 시흥 주민들이 출입하였던 우시장들이었다. 소사장, 황어장은 신현동,대야동 등 옛 소래면의 서쪽지역 주민들이 출입하였으며, 삼거리장은 연성동(하상동, 하중동, 장곡동, 장현동,광석동, 능곡동, 화정동)과 군자동(거모동, 군자동, 월곶동) 일대의 주민들이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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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거리시장터(1990년대) |
우시장을 제외하면 시흥지역관내에는 대규모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농촌지역 주민들은 인근에 있는 인천이나 부천,안양, 광명 등의 시장을 이용해왔다. 도일장만이 그 일대의 주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상권이었다. 뱀내장은 경기 서남부일대에서 손꼽히는 우시장이었으나 소 이외의 거래 품목은 그리 많지 않아서 이 일대의 주민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을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시흥지역의 정기시장체계가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근대에 들어와서는 시흥 인근지역에 도시가 빠르게 성장해 나간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시흥시 일대 장시 중 현 시흥지역에 있던 것은 뱀내장, 방축두장, 상직곶리장, 삼거리장, 도일장이다. 이 중 「국문헌비고」 시기에 개장되어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장은 뱀내장이다. 방축두장, 상직곶리장은 20세기 이전에 폐시되었으며, 상직곶리장의 위치는 물왕동 월미에 해당한다. 안산군 초산면에 있었던 방축두장의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지명으로 보아 보통천 방죽이 있었던 곳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종대에 제작된 「안산군읍지」(규17366)에는 안산군의장시로 광석장과 산대장을 들고 있는데, 광석장의 위치는 현재 광석동 나븐들에
해당하며, 산대장은 현재의 안산시 선부동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왕동 월미와 광석동 나븐들이 보통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직곶리장과 광석장은 동일장이거나 지척에 두고 장을 옮긴 대체장이며, 방축두장 역시 이와 마찬가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광석장과 산대장은 활성화되지 못하여서20세기 이전에 폐시되었는데, 이와 같은 사정은 “(광석장은) 물화의 매매가 부족한 곳이어서 상인들이 찾지 않아 저절로 폐시되었으며, …… (산대장은) 벽처에 있어 돈이 거의 돌지 않고 단지 토산물만이 교역되어서 한낮에 파시 상태가 된다”는 「안산군읍지」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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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일시장 풍경(1990년대 말) |
삼거리장이 설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미 1920년대에 장이 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거리장에는 원래 우시장이 서지 않았으나 박경선 씨와 정인섭 씨의 우시장터 기부로 1938년 10월 30일에 우시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삼거리장은 1950년대 초반에 도일장과 안산시장이 신설되면서 쇠퇴하게 된다. 도일장은 1953년에 신설되어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안산시장은 1954년에 구 수암면소재지에 신설되었고, 개시일은 5·10일이었다. 안산시장은 1977년 자료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전에 폐시된 것으로 보인다. 삼거리장을 이용했던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삼거리장은 안산시장이 설치되면서 상권이 위축되었고, 도일장이 자리 잡게 되자 폐시되었다고 한다.
안산시장이 직접적으로 삼거리장의 상권을 약화시킨 것은 개시일이 5·10일로 서로 같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폐시 이후 삼거리장 일대의 주민들은 서로 추렴을 하고 유지들의 기부를 받는 등 시장 복원을 위한 여러 노력을 하여서 1956년에 장이 다시 설치되게 된다.다시 설치된 삼거리장은 원래의 개시일인 5·10일이 아니라 2·7일에 열리게 되는데, 이는 안산시장에 밀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삼거리장 역시 안산시장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전반에 폐시되었다.
「안산군읍지」에서 ‘벽처’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시흥지역은 서해안에 접해 있는 까닭에 각처에서 물자들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할 수 없었으며, 이와 같은 이유로 뱀내장을 제외한 시흥 관내의 정기시장들은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말에 들어서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장시들도 폐시되고, 뱀내장만이 개시일과 소재지의 변동 없이 지속되었다. 이는 경기 서남부 일대의 주요 우시장으로서 뱀내장이 차지하고 있던 지위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시체계가 불안정한 가운데, 일제시기에 들어와 시흥 인근에 있는 인천 및 부천, 안양의 상권이 커지게 되자 시흥지역의 주민들도 이들 상권 중 거주지역에서 근거리에 있는 시장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인천에서 시흥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한 시장은 동인천역 주변에 있는 배다리시장이었다. 배다리시장은 송현동 수문통 수로 제일 안쪽에 위치한다. 수문통 수로는 원래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고랑이었는데, 개항 후 일본인들이 이 일대의 저지대를 매립하여 택지를 조성하면서 원래의 갯고랑은 수문통 수로로 불리게 되었다. 점차 이 수로 주변에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1930년에 이르러서는 송현동에서 송림동, 배다리로 이어지는 긴 수로변이 야시장 거리로 번창하기에 이르렀으며, 해방 이후에도 인천 상가의 중심지로 남게 된다.
인천 배다리시장은 시흥의 서북쪽지역에서 많이 이용하였다. 이 일대에서 배다리시장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인천시 운연동, 구월동, 주안동을 지나는 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길은 현재의 수인산업도로와 대체로 일치하는데, 1917년에 측도한 1:50,000 지형도를 보면 시흥지역을 관통하는 유일한 대로로 나타나 있다. 이 길은 대야동, 계수동, 은행동, 미산동 등 수인산업도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신천동에서 인천 시내까지 버스가 운행하면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가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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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산동과 포동 주민들은 소래포구를 경유해서 배다리시장까지 가는 길을 이용하였다. 여기에서 소래포구로 가려면 소래염전 둑을 타고 가다가 소래철교에서 북쪽으로 1㎞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이 다리는 염전에서 소금을 실어 나르는 가솔린차가 이용했던 것으로, 모두 두 개가 있었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갯고랑을 따라서 5~6m 높이의 나무기둥을 차례로 박고 그 위로 송판을 깔아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갯고랑을 따라서 나무기둥을 박았기 때문에 다리가 편평하지 못하고 경사가 졌다. 이 나무다리는 사람만 간신히 다닐 수 있었으며, 밀물일 때는 잠겨서 썰물 때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 다리는 1960년대 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소래포구에 도착한 다음에는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배다리시장까지 갔다.
【자료 출처 : 「시흥시사(始興市史)」 제5권 <시흥 농촌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中】
김경혜 기자 niba8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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