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간 속에서 시간을 구성하며 산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이지만 남겨지지 않은 역사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만다. 문자화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말을 통해서 재현되기도 하는데 바닷물이 드나들던 시흥의 갯벌은 단단한 땅으로 바뀌었고, 배가 드나들던 갯고랑에는 옛 추억이 아쉬워 찾아오는 바닷물만 오갈 뿐이다. 본지는 「시흥시사(始興市史)」를 참고해 옛 시흥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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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산동 방골 당집 |
2. 마을공동체의 의례와 신앙
시흥시 마을신앙의 제(祭)의 명칭은 경기도지역의 일반적인 사례와 마찬가지로 당제, 산제, 산신제 등으로 나타난다. 제일(祭日)은 음력 10월 초순경이 대부분이었는데 시흥시의 주요한 생업이었던 농업의 가을 추수시기와 관련이 있었다.
연간 2회의 정기의례를 행한 마을도 있지만 대부분 연간 1회의 의례를 행하였다. 여름철의 우물고사는 각 가정별로 지하수 또는 상수도가 설비되지 않았을 당시 마을 주민들의 공동 식수처였던 우물을 함께 청소하고 정기적인 의례를 치름으로써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또 비정기적인 의례로 기우제를 지내는 경우도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마을신앙의 대상은 당제, 산제 등의 명칭에 나타나듯이 마을 내의 산과 구릉에 위치하며 ‘도당신’의 명칭이 다수 확인되었다. 과거 시흥지역 마을신앙의 특징과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2-1. 방산동 방골(다니, 황골, 마루미) 당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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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산동 방골 당고사 신목의 폐백 |
방골 1통에 속하는 방골, 다니, 황골, 마루미 네 개의 마을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음력 10월 열흘 안으로 날을 잡아서 당고사를 지내왔다. 제의 대상인 당나무는 방골 뒷산에 있는 참나무이며 당나무 앞에는 짚주저리가 있다.
고사 전날 생기복덕을 가려 뽑힌 주민이 올라가서 예전 짚주저리 위에 새로 이엉을 엮어‘옷을
입힌다’. 고사를 지내기 전에 제관인‘당주’를 미리 정하는데 마을의 남자 중 부정이 없고 날짜를 봐서 적합한 사람으로 정한다. 당주는 제물 준비와 함께 당에 가서 정성을 드리는 일을 하고 다른 주민들은 제물 준비를 돕는다. 부정한 사람이 출입하지 않도록 왼새끼를 꼬아서 당주 집 앞에 걸어 둔다.
제일 새벽, 당주 부부가 노구메(밥)를 짓고 당에 올라가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당제가 시작된다. 날이 밝아서 돼지를 잡아 오면 먼저 돼지머리를 당에 올리고 비손을 하는데 이 일은 여자가 한다. 비손 후, 아침나절에 돼지머리 삶은 것과 팥시루떡, 산자, 곶감, 사과, 배, 대추, 밤, 포, 술 등을 차려 당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터를 닦아 놓고 부정고사로‘안반고사’를 지낸다.
안반고사에 올리는 술은 당주집에서 직접 담가서 올린다. 예전에는 떡도 당주 집에서 했으나 요즘은 방앗간을 이용한다.
‘안반고사’에는 남자‘당주’와‘하주’가 참여하는데 하주는 모두 8명으로, 역시 주민 중에서 나이와 날짜를 봐서 좋다는 남자만 할 수 있다. 안반고사를 지낸 후에는 대동우물에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
우물은 제의 전날 미리 깨끗하게 치워 둔다. 우물고사가 끝나면 낮 12시 가량이 되는데 남자들이 안반고사를 지낸 곳에 올라가서 음복을 한다. 여자들은 제의는 물론 음복을 할 때도 참여할 수 없다. 음복 후 제물 비용을 낸 집에 돼지고기와 떡을 한 몫씩 나눠 주고 돼지 내장은 끓여서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먹었다.
2-2. 금이동 거멀 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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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이동 거멀 산제 축문 |
금이동 거멀에는 격년으로 음력 10월 초사흘에 지내는 산제가 전승되고 있다. 거멀 마을회관에서 공미(貢米) 거출 명단을 보관하고 있다. 신목인 당나무는 거멀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 동편의 산에 있다. 수종은 상나무(향나무)이며 고사(枯死)직전에 있어서 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제물 준비 등 산제와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지는‘당주’는 동네 사람 중에서 생년월일을 따져서 부정하지 않은 사람을 뽑는다. 당주는 3일 전부터 동네 우물을 치우고 그 물로 매일 목욕재계를 하는데, 음력 10월 초사흘이면 매우 추울 때인데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당주 집 대문간에는 황토를 깔아 놓아서 부정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도록 한다. 부정한 사람이란 상주,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 해산(解産)한 집의 사람 등이다. 제관은 당주와 별도로 정하는데, 생년월일을 따지지는 않고 예법을 잘 아는 사람으로 하며, 축관은 참석자 중에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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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이동 거멀 산제 비용 내역(1994년) |
제물로는 소머리, 삼색과일, 어물, 흰무리(백설기) 하나, 팥시루떡 하나를 올린다. 술은 ‘조라’라고 해서 3일 전에 우물물로 술을 담가서 당나무 밑에 파묻어 놓았다가 제사를 지낼 때 꺼내 쓴다. 소머리는 안양 박달동이나 서울 독산동 푸줏간에 가서 사 온다. 흰무리는 당주 집에서 찌고 팥시루떡은 다른 집에서 쪘다. 제물은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걷은‘공미(쌀)’로 장만했다. 이웃마을인 진말 사람들은 제물 비용을 내기도 하는데 제사에 참석하는 예는 없었다.
산제는 밤 10시경에 시작하는데 먼저 당 아래 있는 터에서 간단하게 잔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 후 당나무 앞에 가서 정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당터에는 백설기와 술만 올리고 팥시루는 정식 제사상에 올린다. 산제를 지낼 때 소지는 별도로 올리지 않는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공터에 모여 떡국을 끓이고 음복을 한다.
【자료 출처 : 「시흥시사(始興市史)」 제5권 <시흥 농촌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中】
김경혜 기자 niba8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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