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간 속에서 시간을 구성하며 산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이지만 남겨지지 않은 역사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만다. 문자화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말을 통해서 재현되기도 하는데 바닷물이 드나들던 시흥의 갯벌은 단단한 땅으로 바뀌었고, 배가 드나들던 갯고랑에는 옛 추억이 아쉬워 찾아오는 바닷물만 오갈 뿐이다. 본지는 「시흥시사(始興市史)」를 참고해 옛 시흥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1.시흥 마을의 형성과 분포
시흥 관내의 마을들은 과거의 행정 단위와 함께 지형·시장권 등을 고려하면 군자권, 소래권 그리고 수암권 등 크게 세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거쳐 ▲군자면에 안산군 마유면·대월면·와리면이, ▲수암면에 안산군 군내면·초산면·잉화면이, ▲부천군 소래면에 인천군 신고개면·황등천면·전반면이 통합되어 각각 속하게 되었다. 본지는 「시흥시사」에 기록된 권역의 변화를 군자권, 수암권, 소래권 3개로 나누어 게재한다.
【1-1.군자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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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동 산뒤마을(1990년대) |
◇ 군자동
군자동의 산뒤마을과 새터말은 시흥이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군자1리였다. 산뒤마을은 조선시대에 산북리라 불리었는데, 군자봉 뒤(북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뒤마을에서 오래 산 성씨는 문화 류씨, 새터말에 많이 살았던 성씨는 김해 김씨 등이며 이 밖에도 이씨, 박씨 등이 거주했다.
구지정마을은 ‘구준물’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내에 9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모두 물이 좋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산 밑의 양지편, 큰말, 아랫말 3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100호가 조금 못 되는 마을로, 예전부터 100호가 넘어가면 좋지 않다고 하여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약 15대조부터 마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전주 이 씨들이 18세손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 외 원주민들로 아랫말에는 황씨, 양지편에는 당씨들이 몇 집씩 남아 있다. 구준물은 예로부터‘설기황당’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이 마을에 처음 입향한 성씨들을 순서대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며, 전주 이씨 영응대군파는 후대에 이 마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 장현동
장현동에는 새재와 뒤일(두일)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었다. 시흥이 시로 승격되기 전에 새재는 장현1리, 뒤일은 장현2리에 속했다. 장현동에 있는 뒤일은 능곡동에 있는 (밖)뒤일과 구분하기 위해 안뒤일이라고도 부른다. 뒤일은 다시 장자터, 오송동(또는 오실개), 절골 등의 자연마을로 나뉜다. 오송동은 마을 앞에 큰 소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절골은 산 밑에 집 대여섯 채가 있는 곳이다.
새재 서북쪽으로 펼쳐져 있는 들은 모두 바닷가에 방죽을 막아서 만든 방죽논이다. 이 들에는 새재뿐만 아니라 광석동 둔터골 사람들도 많이 농사를 지었다. 새재와 둔터골 사람들은 같은 들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서로 두레를 초청해서 노는 일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상여도 같이 멨다고 한다.
반면 안뒤일과 새재사람들이 어울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1960년대 중반 새재에는 70호 가량이 살았으며, 안뒤일은 37호 가량이 거주하였다. 6·25전쟁 이후 장현동에 들어온 피난민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새재에 대여섯 집, 안뒤일에 한 집 가량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택지개발이 되면서 예전마을경관이 완전히 사라졌다.
새재는 각성바지 마을로 연일 정씨, 전주 이씨, 김해 김씨, 신안 주씨 등 여러 성씨가 있었으나 이중 제일 많이 살았던 성씨는 연일 정씨이다. 새재에 사는 전주 이씨는 장곡동 전주 이씨와는 파가 다르다고 한다. 안뒤일은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 능곡동 밖뒤일의 안동 권씨와 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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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곡동 긴마루(1990년대) |
◇ 장곡동
장곡동은 시 승격 전에 장곡1리와 2리로 구분되었다. 장곡1리에는 긴마루(진마루 또는 진말), 섬말 등의 마을이 있었으며, 2리에는 매꼴, 안골, 개다리 등의 마을이 있었다.
장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장하리(長下里)와 응곡리(鷹谷里), 도촌리(島村里)를 통합하여 만들어졌는데, 장하리와 응곡리, 도촌리는 각각 긴마루와 매꼴, 섬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호구총수」(1789) 안산군 마유면에는 긴마루라는 한관 지명의 한자식 표현인 장종리(長宗里)라는 동리명이 나와 있다.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는 마유면 관할에 장종리라는 지명은 찾을 수 없고 대신 장상리(長上里)와 장하리(長下里)라는 지명만 볼 수 있는데, 이 두 지명은 장종리라는 지명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촌리의 경우는 「호구총수」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이후에 새로 신설된 동리라고 할 수 있다.
장곡동 앞들은 바닷가에 방죽을 막아서 만든 것으로, 섬말의 신설은 바닷가의 개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무렵 장곡1리에 속했던 긴마루와 섬말의 가구수는 70호 가량이 되었으며, 장곡2리에 속하는 매꼴과 안골은 80호가량 되었다. 가구수가 조금씩 늘어나 택지개발 직전에 1리는 80호, 2리는 100호 가량이 되었다.
긴마루의 대성은 전주 이씨로 해방 무렵 50호가량이 살았다. 매꼴에 많이 살았던 성씨는 덕수 장씨와 전주 이씨였으며, 김해 김씨도 더러 거주하였다.
장곡동은 1990년대 후반에 택지개발이 되면서 예전 마을의 경관이 거의 사라졌다. 긴마루는 현 삼환아파트 자리에 있었으며, 매꼴에는 삼성아파트가 들어섰다. 안골은 매꼴 북쪽으로 있었다. 섬말은 월곶IC에서 시흥시청으로 가는 도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을이 벌판에 섬처럼 솟아 있어서 도로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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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곶동 마전(1990년대) |
◇ 월곶동
월곶동은 예전부터 ‘달월 열두 동네’라 불릴 만큼 많은 마을들이 있다. 월곶동에는 큰 마을로 월동, 상골, 고잔, 마전이 있으며, 이 밖에 작은 마을로 벗말, 궁골, 새터말, 응고개, 방고개, 구능뿌리, 이호정, 통심이 등이 있다. 또 섬산과 신촌마을이 있는데 소래염전이 조성된 이후 염전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일제시기까지 월곶리는 하나의 리였다가 해방 이후에 1리와 2리로 나뉘게 되었으며 다시 고잔이 3리로 분리되어 나오게 되었고, 그 후 다시 1리에 속했던 마전이 4리로 분리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전은 월곶동에서 군자동으로 가는 길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전은 삼밭이라고도 하는데, 삼을 심어 길쌈을 하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통심이는 월동과 마전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들 마을은 영동고속도로가 나면서 집들이 많이 헐렸다.
월동은 경주 최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으며, 고잔에는 순흥 안씨들이 많이 살고있다. 상골은 각성바지 마을이나 그중 순창 조씨와 순흥 안씨가 많은 편이다.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월곶동에 가장 먼저 거주한 성씨는 안동 김씨이며, 그다음으로 순흥 안씨와 순창 조씨가 차례로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안산군 지역 72개 성의 계보를 기록한「연성성보」에는 월곶동 성씨로 안동 김씨, 순흥 안씨, 순창 조씨, 의령 남씨 등이 나와 있다.
◇ 거모동
거무개는 배우물 서북쪽으로 오이도·월곶동·도일을 잇는 삼거리에 위치해 있다. 조선 세종 때 학자인 정인지의 셋째 아들인 정숭조의 후손이 처음 이곳에 세거하기 시작했는데, 월곶선을 따라 동쪽 지역을 ‘웃말’, 서남간 지역을 ‘아랫말’이라 부르고 있으며, 또 웃말의 동쪽을‘북수실’, 아랫말의 남쪽지역을 ‘와가물’이라 칭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는 안산군 대월면 거모포라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법정리 명칭을 거모리라 하였다.
도일은 시흥시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도일시장과 군자초등학교, 동사무소 등이 자리 잡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조선 초기만 해도 바닷물로 인해 군자초등학교뒤(북쪽) 돌산(현재는 호나자산 또는 환자산, 주라산이라 칭하고 있음) 골짜기에 자리를 잡아 돌고을·돌골·돌고지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부터 ‘도일’이라 칭하게 되었다.
전의 이씨·성주 이씨·순흥 안씨 등이 처음 세거한 도일은 예로부터 ‘만호지지’라 하여 일만 가구의 집이 들어설 자리라고 어느 선비가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사미(새미)는 거무개 북쪽, 옥녀봉 밑(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 본래 청주 한씨가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한두리라 칭했다. 구전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옥황상제의 딸 옥녀가 이 마을에 내려와 비단을 짰다는 연유로 해서 ‘사미’라 했는데, 일제 때 일본식으로 표기하기가 어려워 비단을 짰다는 연고로 ‘비단 금’자를 따서 ‘금미’로 개칭했다가 해방 이후 ‘사미’로 환원되었다. 현재는 사미로 통칭되며 ‘새미’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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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율동 정촌(1980년대) |
◇ 죽율동
죽율동은 정왕동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북동쪽으로는 시흥시 거모동, 남동쪽으로는 안산시 신길동과 접해 있다. 죽율동은 ‘댐마을’이라 불렸는데 「한국지명총람」(1985)에 따르면 큰 논배미를 지칭하는 한배미, 대야미의 뜻이라고 한다.
죽율동에는 큰말, 한배미, 새말, 정촌 등의 마을이 있다. 큰말은 죽율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지명이다. 해방 전에 60호가량이 살았으며, 이중 순흥 안씨가 30여 호, 금녕 김씨가 10여 호 되었다. 새말은 도로변에 위치해 있으며 새말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곳이 한배미이다. 두 마을을 합해서 50호가량 되었으며 금녕 김씨와 남평 문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정촌은 대장간이 있었다고 하여 점촌이라고도 불렸으며 각성바지 마을로 오래 산 성씨로는 금녕 김씨 등이 있다.
죽율동에서는 대부분 농사를 지었으며 어업이 생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았다. 갯일을 하게 될 때는 인근 신길동 능길 쪽 갯벌에 나가야 했다. 죽율동 주민들이 어업에 많이 종사하지 않은 것은 군자염전 조성으로 바다가 막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료 출처 : 「시흥시사(始興市史)」 제5권 <시흥 농촌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中】
김경혜 기자 niba8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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