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밥 먹여 주냐?”
이런 비아냥은 이제 구식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밥만 먹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서 문화는 어느 한 지역이나 나라의 대외 이미지를 좌우하는 브랜드로서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지역, 곧 지자체는 ‘주식회사’이고, 단체장은 CEO(전문 경영인)이기를 요구받고 있다.
시장･군수나 도지사가 결재서류에 도장이나 찍던 시대는 지나갔다. 세일즈맨이 되어 점퍼에 운동화 차림으로 해외 기업들을 발이 부르틀 정도로 찾아다니며, 더러는 문전박대도 감수하면서 유치영업을 해야 하고 자기 지역 상품 수출을 위해 혀가 닳도록 브리핑을 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지자체 단체장들이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라면 아예 단체장 선거에 입후보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예술은 이같은 ‘세계화’의 전장(戰場)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강력한 무기다. 한 지역이나 나라에 대한 심리적 친근도를 높이는데 문화예술만큼 잘 먹힐 수 있는 것도 없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한글･한식(韓食)･한복･한옥･한지(韓紙)･국악 등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6개 분야를 ‘한(韓)스타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한류(韓流)’를 보다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문화를 세계에 알려야 하는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연전에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내 이름은 삼순이’에서 주인공이 제빵 기술을 배운 ‘르 꼬르동 블루’라는 프랑스 요리학교는 미국･영국･일본･한국 등 세계 10여국에서 분교를 운영하면서 프랑스의 국가 이미지와 프랑스 빵의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전주시의 700여 채 전통한옥이 모인 ‘전주 한옥마을’에는 지난해에만도 약 5만명의 외국인이 찾아와 묵고 갔다. 이곳은 지금 문화재 등록이 추진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만이 브랜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문화의 토양이 되는 것은 기초예술이다. 기초예술이 깊은 뿌리를 갖지 못하면 그 나라, 그 지역 문화의 층위(層位)도 결국 부실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기초예술은 어떤가?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정작 기초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2006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문학･미술･사진 분야 예술인들의 63%가 ‘문화예술 본연의 일’을 통한 수입이 아예 없거나 월 평균 10만원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다. 음악･무용･영화 분야에도 수입이 없는 경우가 25%에 이르렀다. ‘문화예술 본연의 수입’이란 소설가가 소설을 쓰거나, 화가가 그림을 그려서 번, 창작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월 평균 수입을 말한다. 화가가 미술학원 강사로 번 돈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래가지고서야 지역이나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브랜드로서의 ‘문화’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지역 자치단체 별로 각자 자기 지역의 문화예술 토양을 일구어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화예술은 지역･국가의 브랜드로서만이 아니라 국민과 지역 주민으로 하여금 문화 체험과 예술 경험을 통해 ‘긍정적 판타지’와 인생의 전환점을 경험하고 사회와 삶을 진지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이끄는 매개이기도 하다.
시흥시의 ‘지역 이미지’와 ‘대표적 브랜드’는 무엇인가? ‘시흥의 문화예술’은 건강한가? 아직도 문화예술인들이 춥고 배고픈 세상은 지역 이미지도 브랜드도, 갖가지 지역축제도 한낱 공허한 ‘빈 수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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