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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일상의 사물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때로는 극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김순겸씨(47·전업작가). 이렇듯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별의미를 갖지 않은 놋그릇, 매화꽃, 목련꽃, 진달래꽃 등 일상의 사물을 즉물적으로 형상화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존재론적 위상이 부여되어있다.
그가 캔버스에 발현시키는 즉물적 대상은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우리 눈으로 지각되는 환영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기억속의 현실이다. 그는 이러한 존재적 사실들을 ‘기억너머 그리움’이란 시리즈로 재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릴 적 제주풍물의 기억은 지금의 그와 미래의 그를 빈혈증상의 즉물적 인간에서 따뜻한 체온이 감도는 낭만적 인간으로 주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들 초록빛 바다, 하얀 유채꽃을 비롯 검정고무신, 호롱불, 구멍이 송송 뚫린 장짓문 등 며칠을 나열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과거의 기억이 있기에 물질은 부족해도 마음만은 풍요롭다고 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그리움을 마시며 기다림의 생명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그는 “그동안 역사의 숨결과 생명의 숨소리와 사람들의 체온을 담아내면서 그림을
그려왔던 나는 지금은 그리움으로만 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전업작가로서 김순겸의 삶은 아직은 고달프다. 특별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진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적지만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미술교습도 조만간 그만두고 작품에만 몰두하겠단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을 때 그 추한 모습도 아름다운 법. 그는 작품으로 승부하여 작품만 팔아서 먹고 살겠다는 다부진 마음을 비친다.
“제가 기억너머 저편의 아련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내려고 하는 데는 이곳 시흥에 살면서 굳혀진 생각같아요”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창작하는 주체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모티브와 소재도 그것 못지않게 필요한 것. 그는 시흥에 살면서 제주와 비슷한 풍경과 인심을 느끼게 되었다. 몇 군데 전전하며 작품활동을 했지만 시흥처럼 고향의 정서를 느껴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후배들을 만나기만 하면 시흥자랑을 하며 그들에게 시흥에서 같이 살자고 까지 권하는 시흥맨이 다 됐다는 김순겸 작가. 그는 천상 서민이다. 서민이 사는 시흥은 모든 것이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앞으로 시흥의 논과 바다, 갯골, 뻘, 연꽃, 고기잡이 배는 그의 즉물적 시선에 의해 모든 이의 그리움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리움 속에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희망입니다. 희망이 있기에 악의 판도라 상자가 열려도 인류는 영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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