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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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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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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목감동(牧甘洞) 

목감동은 시흥시 중심부에서 동쪽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안양시, 남쪽으로 안산시, 서쪽으로 연성동, 북쪽으로 매화동과 경계를 이룬다. 조선시대 이 지역에 ‘목암사(木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경내의 단감나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절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자 목암사의 ‘목’자와 단감나무의 ‘감’자를 따서 ‘목감’이라 했다는 데서 동명이 유래하였다.

【1】 물왕동(物旺洞)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초산면(草山面)의 물왕리(物旺里)와 상직리(上職里)였다가, 1912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로 안산군 내 동리의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물왕리로 합쳐졌다. 1989년 법률 제4050호에 의해 시흥시가 출범하면서 시흥시 물왕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은 목감동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초산면 소속으로 ‘물항동리(勿項洞里)’와 ‘상직곶리(上職串里)’가 나온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년 경) 안산군 초산면에는 물왕리를 ‘물앙골’로, 상직리를 ‘얼미’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 능골

장자골 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앞산이 광산 김씨의 종산으로 산 중턱이 능을 쓸 수있을 만큼 명당자리라고 한다. 이 마을은 그곳 아래 위치한 취락이라고 해 ‘능골’로 불렀다. 마을에는 안골, 장자골, 물왕골 주민들이 함께 매년 음력 10월 길일을 택해 안골 도당나무 앞에서 나무제를 지냈다.

= 물왕골(物旺谷)

물왕저수지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예로부터 물이 많은 동네라 하여 ‘수다동(水多洞)’ 또는 ‘수동(水洞)’이라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닿았다 하여 ‘항동(港洞)’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호구총수」에 따르면 이 마을 지면이 ‘물황동리’였는데, ‘물왕동’은 ‘물황동’의 발음이 변하여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물왕골은 진천 성씨와 성주 이씨가 처음 세가한 이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진천 송씨는 강희안의 외손 송평(宋平)이, 성주 이씨는 이군미(李君美)가 입향자로 알려져 있다.

= 안말

삼태기처럼 오목한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안말’이라 부르는데, 물왕저수지와 금이동 도리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진천 송씨와 성주 이씨가 처음 세거한 마을로 예조좌랑 송윤종, 내섬지정 송평, 첨지중추부사 송복견, 해주목사 송거, 종사량 이군미, 용양위부사과 이광원, 참봉사직 이하보 등의 묘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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