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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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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5.1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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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금이동(錦李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삼리 도두리(道頭里)‧강창리(江倉里)였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전반면이 신현면‧황등천면과 함께 소래면으로 편제되어 신설된 부천군에 속하게 됨에 따라 부천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의 시흥군 편입으로 시흥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시흥군 소래읍 도창리가 되었다가, 1989년 시흥시의 승격으로 시흥시 도창동으로 자리잡았다. 행정동은 매화동으로 ‘금이’는 거멀(검월리)에 있는 금월산의 ‘금’(錦)자와 도리재의 ‘이’(李)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 쑥고개

솔개고개에서 동쪽으로 논곡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쑥이 많이 나는 고개였다고 한다. 서정만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묘를 쓰고 중국에 가서 영의정을 지냈다고 하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인물이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이곳에 회(灰)를 부어 혈을 끊었다고도 전해진다. 일제 때 여흥 민씨 문중에서 묘를 쓰려다가 반대로 못쓰기도 했다.

= 안장바위

운흥산 정상에서 도리재 마을 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위로, 말의 안장처럼 생겻다.

= 연못배미

동막골 안에 있다. 평산 신씨 선대의 묘를 쓸 때 이곳에 연못을 팠는데, 그후 논으로 변모하자 ‘연못배미’라 불렀다.

= 영세들

방죽말저수지 제방 아래(동북쪽)에 있는 넓은 들이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사신을 보낼 때 ‘영세들에 모를 냈는가 알아보라’고 할 만큼 중국에서조차 관심을 가졌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이곳이 지대가 높고 토질이 건조해 큰비가 와야 모를 낼 수 있을 만큼 물이 귀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이다. 1939년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리안전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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