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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앞산을 산책하다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잡초를 보니 봄이 훌쩍 다가왔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엄습하는 겁니다. 뭔가 중요한 일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놓친 것 같기도 하고......중요한 약속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잊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이맘때 해야만 하는 겨울 옷 정리도 못했고, 봄 맞이 대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달에 한번 하는 독서모임의 선정 도서를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하게 되는 각오들이나, 올해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것 같은 설레임들이 봄과 함께 덩달아 들뜨곤 했는데.....아직 채 다 오지 못한 봄 때문일까요?
개나리, 목련, 벚꽃 등등......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지천이면 시큰둥한 이 마음도 설레임으로 가득하게 될까요? 매말랐던 나무에 연두빛 새순이 돋고,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이 계절에 생각하기에 따라 재밌는 일 투성이고, 좋은 사람들도 옆에 있고, 꿈 꾸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같은데.............왜 이 봄이 가슴 설레이지 않는 걸까요?
봄은 상징하는 의미도 커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봄은 독립을....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또 다른 의미는 어렵고 힘든 일의 끝에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버리고 얇고 하늘거리는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일이 설레였는데........
봄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두근 거리고 하루를 기대하게 되는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봄 이야기를 하면서 나열하는 단어들에 왜 설레임이 빠져있는지 ....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골치아픈 걱정거리가 있는가? NO/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가? NO/ 가족들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가? NO/ 한 집에 사는 속 썩이는 사람이 있는가? NO/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겼는가? NO/ 술 한잔 생각날 때 연락할 친구가 있는가? YES/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는가? NO/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Y..E..S.......더....더.....더....
살다가 시큰둥한 날 하루쯤 있을 수 있는데..... 그것조차도 완벽하게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날들도 만들고 싶은 더....더....더가 문제였나 봅니다. 겉모습은 이제 정말 어른인데.....마음속은 아직 더...더...더하고 싶은 것들이 심장조차 무디게 만들어 가슴뛰는 설레임을 억누르고 있었던가 봅니다. 결국 욕심이었나요?
적지 않은 나이 책임져야 할 것들은 많아지고 실수도 경험이 되는 시절이 지났다는 생각은 한가지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만 한다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노년이 되더라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심....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심..........늘어가는 주름을 가리고 싶은 욕심.......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언니. 좋은 누나. 좋은 딸....... 끝을 알 수 없는 욕심끼리의 충돌사고로 인해 몸도, 생각도, 감정도 둔해지게 만들었나 봅니다. 잠시 쉬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현상태를 확인하라는 점검 메시지 였던가 봅니다. 그래서 이 봄이 설레이지 않는다고.....다른해와 같지 않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던가 봅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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