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다리 수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나 보행기를 이용하여 돌아다니셨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였기 때문에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방과 후에 할머니를 부축하여 천천히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매일 같은 산책에 동네 어른들은 나를 ‘효녀’라고 불렀었다. “할머니는 정말 복 받으셨어요. 효녀인 손녀 둬서!”
지금이야 머리 좀 컸다고 불효를 저지르지만,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보다 할머니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아 할머니를 너무나 좋아했고 잘 따랐었다. 내가 항상 할머니한테 하던 말이 있다. “할머니!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야 해! 내가 다 닦아줄게!” 이제와 생각해보면 출생신고서 인감도장도 마르지 않은 초등학생이 어디서 이런 말을 주워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례하고도 귀여운 말에 “그래, 우리 똥강아지야.”하곤 웃으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 없었다. 수술한 다리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질환들이 복합적으로 찾아왔고, 복용하는 약은 점점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혼자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방금 했던 일을 기억하기는커녕 자식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설마하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절망적이게도 치매 진단을 내렸다. 치매는 환자보다 가족들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봤으나 어린나이에 이해하지 못했는데, 말로만 듣던 ‘치매’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원래 하던 것처럼 우리 집에 모시기로 했다.
치매 환자가 으레 그렇듯, 할머니에게 가장 큰 문제는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었다. 치매 이전에도 화장실에 가는 것을 불편해하셨는데 치매 이후에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누운 자리에서 용변을 보았다. 기저귀도 가끔 착용하고, 이마저도 싫다고 온몸으로 거부했다. 우리 가족의 타협점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돗자리를 까는 것이었다. 방과 후에 나는 할머니가 용변을 보았는지 확인하고, 보았다면 할머니를 씻긴 후 옷을 갈아입혀드리고 돗자리와 바닥을 닦는 것이 주된 일과가 되었다. 소변이 그렇게 쓴 냄새가 나고, 끈적거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남들에게는 돗자리가 피크닉 갈 때 챙기는 용도이겠지만 나에게는 매일같이 닦아야하는 방수 천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고집도 심해져갔다. 군것질을 참 좋아하셨는데 베개 밑에 넣어두었던 낡은 천지갑에서 돈을 주섬주섬 꺼내며 새우깡, 빠다코코넛, 맛동산, 청포도 사탕 등 나의 이름은 잊어버려도 과자 이름은 정확하게 읊으신다. 효녀인 손녀 서운하게시리. 하지만 할머니는 당뇨가 있어 음식을 가려서 드셔야 했는데 과자를 워낙 좋아해서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사다주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되면 토라져서 하루 종일 식사를 거부하셨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할머니의 식사는 나와 동생의 담당이여서 할머니가 식사를 거부한다면 우리가 힘들어졌다. 아무리 할머니가 좋다고 한들,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집으로 곧장 가서 식사까지 준비해야하는 현실이 초등학생에게 얼마나 버거웠을까.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토라진 할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제발 밥 좀 먹으면 안 돼? 나도 친구들하고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고! 할머니 마음대로야!” 할머니는 갑자기 눈을 세모꼴로 만들더니 음식이 담긴 접시를 던져버렸다. 항상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던 할머니였는데, 이때 분노로 잠식되었던 할머니의 눈빛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할머니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쁜 말을 내뱉은 내 자신이 밉고 후회되었다. “우리 할머니, 기력도 좋네! 내가 잘 못했어요~ 과자는 내일 먹자. 지금은 밥 드셔야지!” 아이 달래는 듯한 내 사과에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풀고 밥을 드셨다.
내가 할머니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할머니, 내 이름이 뭐야?”이다. 할머니는 온전하진 않지만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셨는데, 이름을 물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선화.”라고 고모이름을 말하면 그날은 내가 평소와 다름없이 할머니를 열심히 돌보아야 하는 날이고, “우리 강아지. 희진이.”라고 하면 내가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날이다. 물론 온전한 정신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가끔 할머니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는데, 내가 할머니를 껴안으면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곤 하셨다. 할머니 정신이 돌아온건가? 착각할 때도 있었는데, 할머니의 기억 저편에 조금이나마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할머니는 치매 증상과 건강이 점점 악화되셔서 어른들끼리 상의 후 전문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중간 중간 찾아뵙다가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연락을 받아 급히 요양원으로 갔다. 요양원에서 보았던 할머니는 한 곳만 응시하고 기운 없는 모습이었는데 그날의 눈은 생기가 돌아온 듯 총명했던 기억이 난다. 이전처럼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리고 사랑한다고 속삭였고, 며칠 뒤 할머니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셨다.
내 기억속의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처럼 다시 아기로 되돌아가는 모습같이 보였다. 어렸을 적 할머니를 보살펴야 해서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 못한 것에 대해 억울하거나 후회되지 않는다. 내가 할머니의 손에 자란 것처럼, 어려지는 할머니를 내가 돌보았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음식, 할머니가 좋아하던 노래, 할머니가 좋아하던 스타일 등 나는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내가 짐을 들고 혼자서 계단을 힘겹게 오르거나 키오스크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등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도 할머니 때문이다. 또한 봉사활동이나 실습을 통해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면 더 잘해드리고 싶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요즘 나는 새로운 도전으로 인해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최종적인 목표는 노인전문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치매 환자를 위한 치매지원센터나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고, 가족들이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것을 잘 몰랐었는지 그저 답답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한 것 같아 죄송함이 있다.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꼭 꿈을 이루어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싶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치매를 겪는 본인이나 주변사람들은 아마 괴롭고 힘든 여정이 될 수 있다. 치매에 관련된 비극적인 일들을 접하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바로 치매는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사랑과 배려로 함께 극복하고 수용해야 하는 질환이다. 어릴 적 우리가 수십 번 질문해도 온화하게 대답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말이다. 언젠가는 치매가 완치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모든 어르신들이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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