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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물 속에 있을 때 자유하다[월요단상] 박진호 목사 (신언교회)
  • shnews
  • 승인 2020.06.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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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적이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이다.
많은 나라들이 자유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 살기를 원하고 있다.
자유, 백만 번 불러 봐도 울림과 떨림 있는 말이다. ‘자유’ 우리를 꿈꾸게 하고 날아오르게 하는 ‘자유’란 말은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 말해도 깊고 푸르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훨훨 날아오르는 환상을 꿈꾼다.
동물학자 리브스 박사가 지은 동물학교라는 우화가 있다.
동물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비하기 위해 동물학교를 세웠다. 이곳에서는 변화를 대비하기 위해 ‘수영, 달리기, 오르기, 날기’를 필수과목으로 정했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은 이 과목들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했다.
오리는 수영에서는 1등이었지만 오르기와 달리기에서는 낙제했다. 그런데 낙제점을 보충하라는 선생님의 강요 때문에 오르기와 달리기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물갈퀴가 닳아버렸다. 이 바람에 수영마저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토끼는 달리기를 잘했다. 하지만 수영에서 과락 점수를 받았다. 이 바람에 강도 높은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물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다리가 퉁퉁 불어올라 달리기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람쥐는 오르기 과목은 잘했다. 하지만 날기 점수가 낮아 별도로 보충학습을 받았다. 날다람쥐도 아닌데 무리하게 날려다 보니 다리까지 다쳐서 오르기 과목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편 독수리는 반항아였다. 날기 수업에서도 1등을 하고 여러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선생님이 독촉해도 날기 수업 이외에는 도통 열의를 보이지 않으며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고집하다가 학사 경고까지 먹고 퇴학 위기까지 내몰렸다.
이 동물학교 우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모든 동물들은 각각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들은 각자가 창조된 목적대로 일을 했을 때는 우수하다는 것이요. 이것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영역 밖의 일을 능숙하게 하려고 애쓸 때는 결코 효과적이지 못함으로 자신이 잘할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이 우화를 자유라는 관점에서 한번 보고 싶다. 
물갈퀴가 찢어진 오리는 어디에 있어서 자유하지 못하다.
다리가 다친 토끼나 다람쥐, 날개가 찢어진 독수리, 모두 자유하다고 볼수 없다.
이들이 자유할 때는 다른 것은 좀 못하지만, 오리는 물 속에 있을 때, 토끼는 달릴수 있을 때, 다림쥐는 이쪽 저쪽 나무를 기어 오를 때, 독수리는 하늘을 날고 있을 때 그때 참 자유를 누릴수 있다.
날개가 있다고 모두 새가 아니다. 날아다녀야 새이다. 새장안의 공작새가 아무리 수려한 날개를 편다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참새보다 초라할뿐이요, 자유하지 못하다. 공연장의 돌고래가 사람들에 의해 많은 박수를 받는다 할지라도 바다의 새우가 더 행복해 보인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가 동물원에서 으르릉 대는 것보다 산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다람쥐가 더 행복할 것이다. 자유는 그런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 그 테두리 안에 있을 때 진짜 자유인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으면서, 인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얻기위해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살겠다고 무단한 노력을 해 왔다. 그 결과 자유가 가득한 삶이 아니라, 죄와 전쟁과 탐욕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이다. 
물고기들은 물속에 있을 때 자유하다. 자유를 원한다면서 물고기가 자유를 찾아 땅위로 올라가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다. 
연을 한번 생각해 보자, 푸른 창공을 높이 나는 연은 멋있다. 그런데 연이 생각하기를 “이 연줄만 없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그러나 그렇지 않다. 연줄은 연에게 있어서 생명줄이요, 연을 날개하는 원동력이다. 줄이 끊어지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추락이다.
요즘은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결혼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혹 결혼한다 할지라도 서로 속박하지 않고 살기로 계약서를 쓴다고 한다. 
진짜 자유와 행복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상처도 받지만, 그 안에서 아이낳고 서로를 맞춰가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그릇 안에 있어야 먹을 수 있다. 땅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먹을 수 없다.
피 또한 몸 안에 있을 때 생명이 된다. 그런데 그 피가 자유를 찾겠다고 몸 밖으로 나오면 그것은 죽음이 된다.
있어야 할 지리에 있는 것이 행복이요 자유다. 
신호등이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내 자유라고 신호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지나간다고 한다면 그 자유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아 갈수 있다. 자유 때문에 불행해 질수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고, 또한 공동체의 규율을 지켜야 한다. 거기에 자유가 있다. 
자유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행동 다 하고, 자기 주장 다 내세우면 그것은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빨리 가고 싶지만 신호를 기다리고, 차선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협조하는 것은 나의 지유가 없어지는 것 갚지만, 오히려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요, 더 원할한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shnews  j5900@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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