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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속에서 만난 스승님[월요단상] 현여(법륭사 주지)
  • 시흥신문
  • 승인 2019.12.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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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가 출가의 삶을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어려서부터 절에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출가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지만 계를 받고 스님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 30년이 됐다.

직지사에서 삭발을 하고 계를 받고 법륭사로 돌아와 300일간 부처님께 지극하게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염불도 익히고 신심을 내기 위해 시작했는데 노스님께서 기도에는 반드시 원(소원)을 세우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가란 돈과 명예 그리고 가정을 이루는 것까지 모든 욕심을 버리는 것인데 원(소원)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며칠간 고민 끝에 부처님 인연이 있어 절에 들어왔고 스님이 되었으니 부처님께 환속하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발원하며 기도했다.

 300일간의 기도를 끝내고 은사 스님이 병고로 투병생활 중이라서 큰 절에서 수행하는 대신 서울 개운사에 있는 중앙승가대학에 입학했다. 중앙승가대학은 스님들 전문 교육기관이라서 부처님 오신 날 일주일 간 방학을 했다. 법륭사에 들어와서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을 끝내고 나니 2, 3일 간 여유시간이 났다.

 친한 도반(스님 친구)과 함께 처음으로 흑석도와 홍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통일호 열차를 타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흑석도에 들어갔다. 흑석도에 들어가서는 도반과 떨어져서 혼자 여행을 하고 나가는 배 시간에 맞추어 만나기로 했다.

 흑석도에서 마을버스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섬의 중 고등학교도 가보고 구석구석을 돌아 봤다. 돌아올 때쯤 항구 가에 앉아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 어부를 보고 있었다. 노을 지는 바다도 보고 노인도 보고 그물도 보고 있으니 노인이 오늘 아침에 스님 두 분이 섬에 들어왔다고 들었다 한다. 그러면서 스님의 길도 참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면 그래도 선택을 하셨으니 끝까지 잘 가시라고 좋은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다.

 노인도 평생 어부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족들을 위해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폭풍우도 만나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을 것이다. 까만 새벽에 일어나면 바다에 가기 싫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바다에 가기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매일 배를 향해 걸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도 한 분이 부처님께 공양물 올리는 그릇을 시주하고 싶다고 했다. 절에서는 불기(佛器)라고 부른다. 절에서는 쓰는 불기(佛器)는 목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전라남도 남원 쪽에서 스님들의 발우, 목기 등을 잘 만든다. 평소에 잘 알던 스님이 추천해 주어서 남원 목기 장인 한 분을 찾아갔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출발하여 점심때가 되어 목기 공방에 도착했다. 물건을 이리저리 보며 고르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셨으니 목기 장인 선생님을 보고 가시라고 연락을 해주었다. 한참이 지나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한 노인 한 분이 들어왔다.

 스님의 얼굴을 보니 편안하다면서 요즘은 목기 만드는 것 배우는 사람도 없고 인건비도 비싸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했다. 더불어 요즘은 스님들 법문이 너무 어렵다며 스님은 좀 쉽게 하고 법문도 짧게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노 목기 장인은 오래된 달력을 잘라 부처님 경전 구절을 적어 놓고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외웠다. 그래서인지 불교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목기 이야기를 뒤로하고 경전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은 그만하면 공부 그만해도 되겠다면 이제는 실천을 하며 살아가라고 한다. 모처럼 마음 깊숙한 울림이 있었다. 아무리 경전 잘 외우고 말 잘하면 무엇 하겠는가. 실천하며 살지 않는다면 말이다. 노(老) 목기 장인과 눈을 마주치면 활짝 웃었다. 건강 잘 지키시고 또 만나자고 하며 헤어졌다.

 절에 돌아와서 며칠이 지나서 우연히 TV를 켜서 불교 방송 종범 큰스님 법문을 들었다. 스님이 법문 끝에 ‘인생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경전을 보겠느냐’하고 말씀하신다. 나는 지금껏 불교는 배워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교는 삶을 떠나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불교이고 불교 또한 삶이다. 불교는 이 세상 사람들 속에 온전히 살아 숨 쉬며 함께 도우며 사는 것이다. 출가 30년 살아온 세월이 많이 부끄럽다. 인생에서 만난 여러 스승님들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삶을 마무리하는 그때까지 남은 출가의 길을 더 열심히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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