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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말 마을 (하중동)[월요단상] 현여(법륭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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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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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륭사 큰길가 공영 주차장 옆에는 운치 있는 은행나무 고목과 샛말 마을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샛말 마을 비석에는 400년 전 경주최씨가 처음 살기 시작했고 이후 법륭사 터에 고성이씨와 4, 5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샛말 마을은 1989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하중2리에서 시흥시 하중동으로 승격되고 1995년 하중동지구 공영개발로 103가구 358명이 정든 보금자리를 잃고 떠났다고 한다. ‘동네사람들과 정겹게 살던 그리운 시절을 그리며 따뜻한 정과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여기에 새겨 둔다.’ 라며 비석의 글은 마무리하고 있다.
 하중동 법륭사 창건주 덕기스님은 나의 은사스님이다. 은사스님은 1980년 초에 녹원스님 총무원장시 사서실장을 역임하며 종단업무를 보다가 지병을 얻어 사임을 했다. 수도권 근교에 지병 치료를 겸하여 수행할 곳을 알아보다가 이곳 하중동에 있는 수원백씨 제실을 매입하여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 법륭사로 개산했다.
 그 시절에는 샛말 마을(하중동)에 오려면 부천 남부역 경원여객 버스 터미널에서 안산행 버스를 타고 소래읍을 지나 은행리부터 시작된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달려야만 했다. 샛말 정류장 앞 작은 언덕위에는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한 여름 햇볕을 가리며 서 있었다. 길을 건너 경운기 한데 다닐만한 길을 걷다보면 마을 우물터가 있었고 그 옆으로 고즈넉이 법륭사가 자리 잡았다.

 수도권을 다니다보며 이만한 살기 좋은 마을도 드물다. 서해의 아름다운 일몰과 끝이 없이 펼쳐진 폐염전터, 호조벌, 여름마다 연꽃을 피우는 관곡지. 샛말 마을은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1995년 공영개발 후 20여년 만에 샛말 마을에 또다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작년 가을 쯤 하중동 공공택지 지구로 지정된 것이다. 정부가 마을을 더 개발해 3,500호 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것이다.
 수도권은 이미 아파트 천국이다. 어딜 가나 아파트다. 한 건물에 똑같은 규격으로 방과 주방과 화장실을 넣고 규격화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법륭사 아란유치원 아이들에게 사는 집을 그려 보라고 하면 지붕과 창문이 있는 집이 아니라 거실의 텔레비전과 소파를 그려 넣는다. 밖에서 보고는 자기 집을 그릴 수 없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이 매일 보는 것은 높은 아파트 단지 뿐이다.
 단출한 가족이 자동차에서 내리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똑같은 철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다. 아파트에서의 삶은 하늘 한 점 보기도 어렵고 여유로운 공간이 하나도 없다. 집안에 불필요한 곳은 없으나 특별한 곳도 없다. 그저 가성비 높게 잘 짜여진 네모난 상자다.
 이런 주거환경에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중동 공공택지 구역에는 신혼부부를 위하여 별도로 500호를 더 짓는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사는 아이들이 창의적인 아이가 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더욱이 여기서 오래 동안 터를 일구고 살았던 사람들을 다 내쫓고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그 동안 수 십 년간 공공개발이라고 살던 사람들 다 내보내고 지은 신도시에서 정말로 모든 사람이 행복했었는지 묻고 싶다. 신도시 건설은 돈과 투기에 몸살을 앓았다.
 30년 전 샛말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살던 그때의 따뜻한 정이 그립다. 샛말 마을 비석 옆의 그 힘차고 아름답던 은행나무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오래토록 살아온 은행나무에게 하중동 신도시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다. 언젠가 풀 더미가 무성한 은행나무 고목 밑을 내가 제초라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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