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지사에 대해 많은 경기도민들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지사 재임시 밤잠을 설치고 끼니를 거르면서 지구촌을 누벼 적잖은 외자를 유치하는 등 경기도 발전을 위해 그야말로 몸을 던져 노력했었다. 손 전 지사가 경기도에 남긴 업적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당에서 대선 후보로 선택될 승산이 없어보이자 탈당, 정치인으로서 명분과 소신을 하루아침에 내팽개쳐버렸다. 이로써 손 전 지사의 이미지와 신뢰성은 결정적인 손상을 입었다.
대선 상황에서 무시해도 좋은 ‘사소한 일’이란 없다. 판단은 후보나 캠프가 아니라 국민이 한다. 유권자들이 반응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큰 일로 변해 대세를 결정짓는다. 지금 손 전 지사에 대한 선호도는 범여권 예비 후보 가운데 단연 수위를 달리고 있다. 범여권에선 벌써부터 ‘손학규 대세론’이란 말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8%를 넘지 못한다. ‘대세론’이라고 하기에는 쑥스러운 수치다. 범여권 후보 경선에 앞서 마의 10%선을 돌파하지 못하면 손 전 지사는 범여권의 불쏘시개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손 전 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지원을 노린 듯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20만 달러 수수 의혹’이라는 허위 흑색선전으로 대선 판도를 뒤집어 놓은 설훈 전 의원을 영입했다. 설훈 전 의원은 DJ의 가신그룹 동교동계의 막내격이자, 2002년 대선 때 흑색선전의 ‘더티 밤(더러운 폭탄)’을 터뜨려 민심을 훔치고 선거 결과를 왜곡시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범여권 대선주자로 변신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에 상황실장 역을 맡아 합류함으로써 손 전 지사가 설씨의 ‘흑색선전 솜씨’를 한번 더 빌려 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아냥이 터져나오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5년 전 대선 때처럼 ‘대 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는 비열한 흑색선전에 속아 판단을 흐리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각오들을 하고 있다.
손 전 지사의 경우는 대선과 총선을 앞둔 이 나라 정치인 모두에게 하나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정치인, 특히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정치에서 명분이 무엇이고 소신이 어떤 것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떻든, 손 전 지사의 이같은 숨가쁜 ‘곡예’와 함께, 요즘 그의 갸름한 턱선에 적당히 덮이는 수염이 세간에서 심심찮은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흔히 매끈한 턱선은 현대 남성 정치인의 정형화된 ‘메이크 업’으로 통한다. 역대 대선에서도 수염을 기른 유력 후보를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지금 양복 위로 덥수룩한 수염을 날리며 대선가도를 뛰고 있는 손 전 지사는 눈에 띤다. 그의 수염이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라는 정체성에 모근(毛根)을 박고 있는 느낌이다.
‘손학규의 수염’이 대중에 각인된 것은 1년 전 100일간의 ‘민심대장정’ 때였다. 당시 탄광 막장에서 혹은 험한 부두 노동터에서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채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뒤덮은 수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넘어 안쓰러움까지 느끼게 했다. 그는 지난달 2차 민심대장정이 끝났는데도 면도기를 들지 않고 있다.
손 전 지사의 수염은 ‘경기고-서울대’의 엘리트 이미지 불식에는 효과적이다. 서민 이미지 부각에 유효하다는 얘기다. 귀공자풍의 앨 고어 전 미국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진 뒤 수염을 길러 이미지 변신을 꾀한 전례와 닿는다.
여기에 대선주자가 난립한 범여권에서 시각적 관심을 잡아당김으로써 독보적 위상을 구축하는 데도 큰 몫을 할 수 있다. 관심은 인지도를 높이고, 이것이 다시 선호도와 지지도로 연결되는 경향이 없지않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있는 국민은 아직도 많다.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키워준 당을 배신하고 침을 뱉으며 하루아침에 돌아선 것은 실책이요 악수(惡手)였다. 거기에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적인 흑색선전의 선수와 손을 잡기까지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않다. 수염에 걸맞는 이미지 쇠신과 자성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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