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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의 길 : 위대한 일상아침 창(窓)가에서 / 김 신 표(시흥매화고 교사, 영문학박사)
  • shnews
  • 승인 2016.06.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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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도 가슴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지난 달 21일, 흑산도 어떤 학교 관사에서는 20대 여교사가 학부모-주민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28일 서울 매트로 구의역에서는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21살 꽃다운 청년 직원이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주어진 일상을 처리할 수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주는 일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초인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범인과 초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이때 쓰기 좋아하는 문장은 아마 이것 일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will also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면 될 것인가?

최근에 나의 신상에도 가볍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몇 년 동안 정성과 시간을 들인 노력이 결국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 버린 것이다. 가슴 설레고, 애태우고, 계획하고, 숨기고, 애쓰고, 눈물 흘리고, 참고... 지난 일들이 네온사인의 회전처럼 돌아간다. 때로는 서럽기도 하고, 때로는 비탄스럽기도 하다. 정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최근 며칠 동안 일상에 충실하고자 처절한 혈전을 치렀다. 몸도 마음도 떨리고, 호흡까지 힘든 상황! 그러나 자아를 파괴시킬 수 없는 것이다. 딜레마는 거기에 있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해서 탄식하여 감정의 궁륭에 빠져 버린다면, 정말 우리는 그 좌절과 파멸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적어도 이기며 꿋꿋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위라면 답은 간단하다. 그 고통이 아무리 처절하다할지라도 일상적인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빚을 지고, 파산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건강을 잃고…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무엇일까? 정상 생활 궤도를 벗어나서, 노숙을 하고, 문전걸식하며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영화장면이 떠오른다. ‘인간 중독’이란 영화이다. 주인공 육군 대령 송승헌의 ‘부하 아내를 사랑-자아의 파괴-권총발사자살시도’는 그런 면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초인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무엇이다." 니체의 이 말이 귓전에 울린다. 무엇을 초극해야 한다는 것인가?

의지를 굳게 하고자 서울 서대문 소재 안산을 등산했다. 귀가 길 잠시 서울역 앞 노숙인을 만나러 갔다. 막걸리가 필요할 것 같아 한 병 사들고 갔다. 막걸리를 한 컵 먹고 그는 곧 마음을 열었다. 더구나 나이도 같아서 한 시간이 못되어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데자뷰(Deja-vu)인가 보다. 부도나고 이혼하고 트럭팔고 1,700만원을 가지고 상경했단다. 신용불량이라 그 대금을 통장에 넣을 수도 없어서 가지고 다녔단다. 여관비 아끼려고 몸에 지니고 서울역 앞에서 잠을 자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차 공격했고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단다. 지갑, 현금 1,700만원, 운전면허증을 다 잃어 버렸단다. 결국, 새까만 얼굴, 때 묻은 손, 절인 옷을 걸친 노숙인! 나는 정성을 들여 일상 복귀를 설득했다. 그러나 본인은 알코올 중독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힘들고 무섭고 자신도 없다고 했다. 한참을 얘기하다 나도 일상에 충실하고자 일어서려 했다. 시뻘겋게 눈이 충혈 된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오라 조금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금 닦아낸 듯 보이는 시뻘건 휴지 옆에, 퉁퉁 부은 입술을 움직이면서 아직 술에 취해 있는 다른 노숙자도 옆에 있다. 그에게도 눈길이 자꾸만 간다. 기괴한 운명이 심술을 부린다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서울역 노숙자와 함께하는 시간까지 겹쳐지며 하루가 저물어갔다. 이렇게 나에도 조금은 의지가 강해지고 일상의 궤도를 힘겹게나마 타고 갈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경험주의 인식론에 의하면, 인간의 최초의 정신 상태는 타블라 라자(tabla rasa, 백지)이며 거기에 오감을 통한 요소가 각인되며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어진 일상은 바로 백지에 새겨지는 생동하는 요소로 보인다. 오관을 통한 입력요소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상! 그것은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것이다. 눈과 입과 마음을 움직여 정신의 영역을 지배해야 할 일이다. 근년에 일어난 슬픈 사연의 당사자들에게 일상에 복귀하여 에너지를 뿌리라고 말하고 싶다. 일상에서 에너지를 쓸 때만이 불안의 압력은 낮아지고 안정의 지수는 올라갈 것이다. 일상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초인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 모두 힘들지만 지긋하게 초인의 길을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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