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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잘 맞는 교사 동아리 일원으로 자비로 해외여행이란 것을 계획했다. 이것은 나에게는 평생 처음 저질러 보는 대단한 모험인 셈이다. 3박5일 동안 우리 7명을 포함한 일행 19명은 캄보디아의 여러 곳을 탐방했다. 그 중에서도 3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속한다는 앙코르왓의 웅대함과 킬링필드의 처참한 기록은 나의 발길의 이동을 막을 만큼 대단했다. 웅대한 인간역사도 잔인하고 쓰라린 역사도 반복된다는 인식이 전경화되는 것이었다. 부남왕조, 진랍왕조를 이어 자야바르만 2세(802년~854년)에 이르러 앙코르 왕조(크메르 제국)가 개막되었다. 1113년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이르러 제국은 확장했고, 이 때에 세운 건축물이 크메르 미술의 최고 걸작이고 자신의 무덤이기도 한 앙코르 와트이다. 그 후 제국은 쇠퇴했으나, 참파에 원정하던 자야바르만 7세가 귀국해 즉위한 이후 1190년에는 숙적 참파를 항복시키고 앙코르 톰을 건설한 후 다시 부흥했다. 열렬한 대승불교의 신자인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톰을 중심으로 바이욘, 타 프롬 등의 불교 사원을 건설하였다. 결국 이 건축이 국력 쇠퇴와 제국 쇠락의 원인이 되었다고들 말해지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앙코르와트의 장대함이다. 건축기간만 37년이었다. 사원을 둘러싸는 사각 해자가 수십 km이며, 5개의 타워가 밭 모양을 하고 있다. 입구가 서쪽으로 건축되어 있어 구원에 대한 힌두교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다. 진입하는 문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수드라들에게 각각 따로 되어 있었다. 계단이 높고, 낮고 없음이 그 차이를 말하고 있었다. 자야바르만 7세가 건축한 바이욘사원과 타프롬 사원도 압권이었다. 어머니를 위한 보석을 박은 자리이며, 개선장군을 맞은 그 위용을 돌벽에 새긴 석조물이 가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로 여행자의 혼은 빼앗아 간 것은 크메르 루즈(Khmer Rouge, 캄보디아공산당 및 그 후 반국조직)의 활동상이다. 캄보디아 공산당은 1975년에서 1979년까지의 캄보디아(민주 캄푸치아)의 여당이었으며, 지도부는 폴 포트, 누온 찌어, 이엥 사리, 손 센, 키우 삼판이었다. 크메르 루주는 무차별적인 처형과 고문을 자행했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 4년간의 학살한 주민 수자는 200만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크메르 루즈의 학살대상은 론 놀 정권(이전 정권)과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자, 지식인, 교수, 의사, 안경을 썼거나 손바닥에 궂은살이 없는 자, 종교지도자들 및 참족, 타이인, 라오인, 고산족들 등의 소수민족들이었다. 불교사찰과 가톨릭교회들은 파괴되었다. 가슴 아픈 일은 크메르 루즈 지도부 상당수가 프랑스 유학 중에 만났고, 키우 삼판은 파리대학의 경제학 박사이며, 캄보디아에서는 최고의 엘리트와 지식인으로 부릴 수 있는 집단에 속했다는 점이다.
이제 캄보디아에 남은 것은 학살의 현장 킬링필드(killing field)를 자행한 인물들에 대한 처벌이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를 자행한 이들의 처벌을 위해 유엔과 공동으로 ‘캄보디아 법원 내의 특별 재판부’(ECCC)를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전범재판소‘가 아니라 훈 센 정권에 속해있는 캄보디아 국내법에 따른 특별 재판소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지 처벌과정은 순탄치 않다고 한다. 폴 포트는 1998년 숨졌고, 휘하 군 사령관 타 목은 2006년 사망했다. 훈 센 총리 자신도 크메르루즈 장교 출신이라는 점이 그 역사의 심판을 어렵게 하는 원이라고 논자들은 분석한다.
역사는 이런 장대함과 잔인함을 수레의 두 바퀴로 달고 오는 것일까? 앙코르와트의 장대함이 있는 곳에 그 흉악한 학살의 역사가 혼재하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인간품성의 뫼비우스의 띠같은 양면이란 말인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려진다. 크메르 루즈의 학살에 이어,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의 사망자,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나치의 유채인 학살 등이 뇌리에 떠오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권력의 회전축이 바뀌었을 때면 이런 악순환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삼국시대 때부터, 고려, 조선,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기득정권에 항거했던 자가 온전한 때가 있었던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그냥 혼란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지상에도 가슴 뭉클한 소식과 증오심을 일으키는 잔인한 뉴스들이 동시다발로 등장한다. 역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또 반복된다. 인간 정신도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또 반복된다. 인류의 철인 니체는 벌써 이런 반복을 ‘영원회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인가? 이 새해 첫 달에 나는 조용히 뜨겁게 외쳐 본다. 인류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사랑과 희망의 씨앗이여! 너의 반복을 실행해 다오, 잔인한 욕망의 씨앗이여! 너의 반복을 멈추어 다오. 역사는 또 다가올 것이다. 반복될 것이다. 이왕에 반복될 것이라면 지순한 사랑의 역사만이 지구를 파랗게 감싸 안고 반복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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