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지난 80년대에서 90년대 초 경제의 틀이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바뀌고 저금리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부동산·증권 등 자산투기를 방관했다가 9년간 쌓인 버블(거품)이 빠지면서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무려 평균 85%나 폭락하는 사태를 초래, 이에 따른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혹독한 경제침체를 경험해야 했다.
아파트 값을 비롯한 자산 가격의 버블 등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기요인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가 나라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다. 버블이란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른 적정수준 이상으로 폭등해 언제든지 꺼질 수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최근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는 보고서에서 ‘서울·홍콩 등 부동산 투기현상이 있는 지역에서 자산 거품이 붕괴하면 주식시장 붕괴보다 훨씬 충격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은 버블 붕괴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긴축이 필요한 시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집값 뉴욕·도쿄보다 비싸
한국은행도 얼마 전 ‘주택가격이 90년대 초 가격급락 직전 수준에 이미 근접해 있다’고 밝혀 거품 붕괴 가능성을 지적하는가 하면,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엊그제 “서울 변두리 뿐 아니라 지방에서는 집값의 버블이 이미 붕괴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걱정이 된다는 건지, ‘부동산 죽이기’의 성공을 자축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추 장관의 발언대로라면 청와대가 꼽은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 외에도 ‘서울 변두리와 지방’의 집값에 버블이 넓게 퍼져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청와대는 서울 강남·서초·송파·목동, 경기 분당·평촌·용인 등 7개 지역을 ‘버블 세븐’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들 지역을 제외하면 집값은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집값 폭등은 언제나 서울 일부지역에서 시작해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최근에는 집값 폭등세가 ‘버블 세븐’ 지역을 넘어 서울 목동과 강북의 용산, 성북구, 경기도 평촌, 일산과 산본 등지로 파급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주요 아파트 가격은 소득수준과 비교해 이미 도쿄나 뉴욕 수준을 넘어섰다. 평당 최고 6천만원대에 진입한 강남 주요 아파트 가격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5배인 일본의 평당 최고 5,860만원(도쿄 가든힐스)보다 비싸다. 지난 7년여 동안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은 무려 117%나 올랐다.
한국경제, 일본형 버블단계 진입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면 우선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전체 주택 가격이 함께 폭락하기 때문에 주택담보 대출 등 부채가 많은 서민층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꾸기 어려워진 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고 금융기관에는 부실이 쌓인다. 세금이 안 걷혀 국책사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썰물 빠지듯 철수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개인 자산의 80% 정도가 부동산에 몰려 있는 반면 일본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6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지게 되면 일본보다 경제체력이 약하고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한국경제는 일본보다 훨씬 큰 충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우리나라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버블현상은 골프회원권, 미술품 등 다른 실물자산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일본형 버블경제의 초기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건 아무래도 그냥 심상하게 넘길 예삿일이 결코 아니다. 정부는 버블 붕괴의 연착륙 방안을 서둘러 강구해
수습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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